오래된 기도
이문재(1959~ )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 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그렇게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 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
솔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이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 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만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 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 2008년 가을호
우리가 아는 기도는 소망하는 바를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절대자에게 비는 것이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소원을 빌면 절대자는 들어주시기에 골머리가 아프실 것이다. 시인의 기도는 다르다. 소원을 비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일이다.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노을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 이 가을 소슬한 바람 속에서 잠시 고독해지는 일도 기도이리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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