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4천800명 등급 상승 '수능 대란'…12월 19일까지 추가 합격 통보

세계지리 정답처리 파장 "이미 하향지원 어쩌나"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이 뒤늦게 오류를 인정했다. 지난해 수능시험 세계지리 8번 문항에 출제 오류가 있다는 전제 아래 성적을 재산출, 피해 학생을 구제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전년도 입학전형 절차를 다시 밟는 혼란이 불가피하게 돼 교육 당국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전망이다. 또 피해 학생의 구제 방법, 재발 방지책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교육 당국, 1년 만에 수능시험 오류 인정

수능시험이 도입된 1994년 이래 출제 오류로 대입 결과가 바뀌는 사례가 생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법원 판결로 출제 오류가 인정된 것도 첫 사례다. 2004학년도, 2008학년도, 2010학년도 수능시험 때 출제 오류가 하나씩 있었으나 시험 시행 후 한두 달 안에 평가원이 오류를 인정해 입시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결국 이번에는 교육부와 평가원이 뒤늦게 오류를 인정, 화(禍)를 키운 셈이 됐다.

지난해 11월 18일 평가원은 수능시험 문제와 정답에 대한 이의신청을 접수, 검토한 결과 138개 문항에 대한 이의 신청 317건 모두 이상 없었다고 밝혔다. 세계지리 8번 문항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자 26일 성태제 당시 평가원장이 나서 기존 입장을 재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태는 숙지지 않았다. 학교 현장에서 출제 오류라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수험생 38명은 평가원과 교육부를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12월 16일 1심에서 법원은 교육 당국의 손을 들어줬다. 일부 수험생은 같은 달 23일 서울고법에 항소했고, 약 10개월 만인 지난달 16일 법원은 출제 오류가 있었다고 판결했다.

애초 교육부 내부에선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받아보자는 의견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론이 악화하고 교육부 국정감사 과정에서도 국회의원들의 비판이 잇따르자 법원으로 가려던 발길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김성훈 평가원장은 "사법부의 최종 판단을 구하기보다 교육적 해결책을 찾으라는 국민적 여망에 부응하고 더 정확히 수능시험을 출제하라는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상고를 포기한 것"이라고 했다.

◆피해 학생, 어떻게 구제하나?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박홍근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작년에 이 문제가 불거지고 나서 여러 차례에 걸쳐 피해 수험생 구제 조치를 즉각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조치는 만시지탄"이라고 했다.

피해 학생 구제 절차는 '세계지리 성적 재채점→입학 전형 후 추가 합격 여부 결정→정원 외 추가 입학 및 편입학을 위한 특별법 제정'의 순서로 진행된다. 교육부는 국회와 협의, 내년 2월까지 해당 특별법을 제정할 계획이다.

현재 세계지리 8번 문항 오답자 1만8천884명 가운데 등급이 오를 것으로 추정되는 학생은 약 4천800명. 이들 중 성적을 다시 매길 경우 얼마나 합격할지는 알 수 없는 상태다.

이달 중순 교육부와 평가원이 재채점 결과를 밝히면, 피해 학생들이 지원한 대학은 2014학년도 입학전형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 대학들로선 행정 부담이 커지는 셈이다.

경북 한 사립대 관계자는 "실제 이번 조치로 당락에 영향을 받는 학생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1명의 피해 학생이라도 찾아 구제하려면 입학 사정 자료를 꼼꼼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어 업무 부담이 크게 늘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8번 문항을 틀려 점수가 낮아지면서 하향 지원, 원하던 곳과 다른 대학에 합격한 경우 구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게 문제다. 하향 지원 여부를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2015 수능시험을 앞두고 구제 절차가 진행돼 피해 학생들이 이번 입시를 준비하는 데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사태 재발 방지책 마련 목소리 커져

뒤늦게 출제 오류를 인정, 대입 결과마저 달라지게 생긴 상황을 두고 교육 당국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04학년도, 2008학년도 수능시험 때는 1문항씩 복수 정답이 인정돼 평가원장이 자리를 내놨다. 하지만 2014학년도 시험이 출제됐을 당시 평가원장과 교육부 장관은 이미 바뀐 상태여서 화살은 수능시험 출제위원 등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정진후 의원(정의당)은 "교육 당국이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했으면 사태가 여기까지 오지 않았고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1년 가까이 마음고생을 하지 않아도 됐다"며 "사과뿐 아니라 행'재정적 책임도 져야 한다"고 했다.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수능시험 문항과 정답에 대한 이의신청 제도가 생긴 것은 2004학년도 시험 때부터다. 그러나 출제자가 직접 이의신청을 심사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공정성, 객관성이 문제될 소지를 안고 있다.

대건고 이대희 교사는 "출제자가 아니라 현장 교사들이 중심이 돼 학생 입장에서 이의신청을 심사할 수 있는 별도 기구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원학원 차상로 실장은 출제 내용을 확인하는 데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했다. 차 실장은 "교육 당국이 실수를 빨리 바로잡지 못해 피해도 막지 못한 것"이라며 "출제 근거 자료를 만들 때 문항에 활용된 자료와 교과서에 소개된 자료가 부합하는지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