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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키는 왜 땅에서 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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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주어진 연수가 팔십, 아니 백이라 하자. 그 하루하루들은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라고 주어진 귀한 시간들이라고 한다. 누구는 형체도 없는 절망이란 괴물에게 무료한 하루를 빼앗기고, 누구는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귀한 하루를 얻는다. 내가 존경하는 키가 작은 남자가 있다. 그 사람 왈, "키는 왜 꼭 땅에서 잽니까? 하늘에서 재면 안 됩니까?(호탕 웃음)…." 진짜 키가 큰 사람은 무릎을 꿇어서 머리가 땅에 닿는 사람이라 한다. 그 말은 씹을수록 맛있다.

2014년 '제18회 민원봉사대상' 시상식 광경을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강물을 흐린다 했던가? 요즘은 온 세상 물을 흐려놓은 자질 미달 몇 명의 미꾸라지 공무원으로 인해 공무원의 사기가 점점 추락하고 있다. 이런 때에 봉사상을 받은 열다섯 명의 수상자. 그 가운데 영예의 대상을 받은 광주광역시 북구청 위생과 나흥대 주무관은 30년 넘게 소외된 구석구석을 찾아 힘든 일 궂은일 마다치 않고 기쁨으로 봉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주말 아침이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잔뜩 싣고 한 시간 정도 달려 '한센정착마을'로 간다. 소록도에서 나병은 치료되었지만 희망을 놓쳐버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그곳에서 나흥대 씨는 참사랑을 몸소 실천하여 그들에게 희망의 가족이 되어주고 있다 한다. 그는 '봉사를 봉사로 여겨본 적 없으며 봉사는 생활이고 삶'이라 했다.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누어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저녁 한 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안도현 시인 )

무엇인가 나누어 주고 싶은 가을이 온갖 퍼포먼스로 세상을 풍요롭게 해준다. 많은 사람들이 풍성한 가을의 향연에 취해 있는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엇을 좀 나누어주고 싶은 작은 손들이 상도 칭찬도 없는 낮은 곳으로 가서 열심히 사랑을 전하고 있을 것이다. 나라에 큰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무조건 달려가서 엎드린 일개미군단 봉사자들을 우리는 얼마나 오래 기억하고 있는가? 정오쯤이면 '사랑의 빨간 밥차'나 '하얀 희망 풍차'를 가끔 볼 수 있다. 그 긴 행렬 중에는 절박한 따뜻한 한 끼를 위하여 춥고 외로운 하루를 잘 견디고 있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따끈한 국밥 한 그릇을 전해주고 싶어 달려와 조끼 입은 봉사자들의 키야말로 하늘에서 재는 쭉쭉빵빵 키가 아닐까? 색바람을 타고 단풍잎들이 팔랑팔랑 낮은 곳으로 내려앉으며 속삭인다. '키는 하늘에서 재는 거예요'라고.

장혜승(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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