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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숙(대구 남구 봉덕동)

딸은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이제 일 년만 고생하면 끝날 것 같은 심정으로 마지막 힘을 다한다. 건강하고 바르게만 자라면 된다고 방심했던 나는 괜히 죄인이 된 것 같다. 자식을 위해 기러기 아빠까지 생겨나는 세상에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해 준 게 없다.

문득 어둑새벽에 정화수를 떠놓고 조상께 비손 하던 할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공들인 자식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믿음이었다. 아들과 손자가 늘 건강하고 하는 일마다 잘되기를 염원하는 할머니의 의례는 하루도 쉴 날이 없었다. 그 정성만으로 소원이 하늘까지 닿아 지금까지 무탈하게 산 것만 같다. 기도는 번뇌를 잊고 마음을 비우려는 것이다. 무엇을 바라는 것은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던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진리를 깨닫기 위해 정진하라고 가르친 부처님도 간절히 바라면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고 하지 않는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도를 시작했다.

안개비에도 옷이 젖듯 차츰 법당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야외로 놀러 가자는 친구들의 유혹도 밥 사주겠다는 것도 다 접어두고 남편 출근길에 따라나서서 해거름에야 돌아왔다. 기도문에 딸아이 사진을 붙이고 'S대학 의과 합격'이라는 소원을 적어 하루에도 수백 번 발원문을 읽었다. 절을 삼천 번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에 욕심내서 삼천 배를 네 번이나 올렸다. 지극정성으로 기도했으니 분명히 부처님의 가피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점심 공양 중이었다. 보리심이 꿈에 부처님을 뵈었다는 말을 시작으로 보광월도 주지 스님한테 입학금을 받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기도 중 깜빡 조는 사이에 부처님으로부터 목걸이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부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이가 이것이 바로 기도 응답이라는 말에 모두 환희심이 가득하다. 두 손을 연봉오리처럼 모으는 데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날마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잠들어도 현몽은 고사하고 꿈도 없이 곯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내게 응답은 없었다.

의과대학에 원서를 내기에는 애매한 점수였다. 기도한 덕은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다 받는다고 했지만 귀에 들리지 않는다. 엄마가 새벽부터 밤까지 열심히 기도한 덕에 성적이 올랐다는 학생의 말에 오히려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만큼 잔소리 듣는 시간이 적어 스트레스를 덜 받은 결과라고 했기 때문이다. 한두 문제만 더 맞혔으면 하는 아쉬움은 부처님에게로 불똥이 되어 튀었다. 남들에게는 모두 응답해 주면서 왜 나만 모른 척하시는지 원망스러웠다. 부처님은 고사하고 절 쪽은 쳐다보기도 싫었다.

에너지가 일시에 방전되었나. 기운이 없고, 명치끝은 답답하다. 허리도 욱신거린다. 앉아도 누워도 편치 않아 정형외과를 찾았다. 조용하고 따뜻한 곳에 누워서 그런가. 물리치료사의 부드러운 마사지 덕인가. 뭉친 근육이 풀리는가 싶더니 웅크렸던 마음도 따라 풀렸다. 기도하지 않았다면 입시에 실패할까 일 년 내내 조바심을 냈을 내 모습이 보였다. 극락과 지옥은 다 마음에서 만든 것이라. 돌이켜보니 법당에 앉아 기도하는 시간이 참으로 평안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연 의과대학이 최선이었을까 의문도 들었다. 복권은 사지도 않고 일등 당첨되기를 빌었다더니 아이 그릇의 크기를 과대평가하지 않았나. 이런저런 생각이 오갔다.

딸은 사범대학을 선택했다. 학생들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는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전액 장학금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부처님의 무응답이 바로 응답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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