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通] 원로 아동문학가 최춘해 동시작가

"나는야 흙을 찬미하는 '흙의 시인'…인생 가르침 흙만 한 게 있나요"

원로 아동문학가 최춘해 작가가 자신의 시집
원로 아동문학가 최춘해 작가가 자신의 시집 '흙의 향기'를 펼쳐들고 소년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중'고교 국어 교과서에는 책에 실린 시의 저자가 본문에 밝혀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청포도'의 작가가 이육사이고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으로 '별 헤는 밤'을 기억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교과서의 동시에는 작가가 누구인지 밝혀져 있지 않았다. 교육과정상 작가를 아는 게 굳이 필요하지 않아서 넣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이런 궁금증을 한 번 품어봤음 직하다. '도대체 이 동시들은 어떤 어린이가 짓는 것일까? 얼마나 똑똑하고 글재주가 뛰어나면 어른들이 이 어린이의 시를 교과서에 실었을까?'

'동시 작가'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어른이 되고 나서였다. '동시를 어린이만 쓰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에 살짝 김이 샌 어른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동시 작가인 최춘해(83) 선생을 만나고 나서 느낀 건 '동시를 쓰는 사람 안에는 동심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어릴 적 소망을 이루고 산 40년

최춘해 작가는 196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뽑히면서 등단했다. 그전부터 최 작가는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시를 지었고 이를 학교 소식지에 발표하곤 했다.

"어릴 때부터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책에 나온 동시들을 보고는 '나도 이런 시를 한 번 써 봤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경북 상주에서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시절 시를 써서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학교 소식지에 동시를 써서 싣기도 했죠. 그러다가 상주 지역 국민학교에 있던 글짓기 지도 교사들이 모여 일주일에 한 번씩 '상주 글짓기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게 됐습니다."

'상주 글짓기회'는 이후 '상주 아동문학회'로 이름을 바꿔 아동문학에 대한 작품활동을 고민하고 연구하게 된다. 최 작가는 이때 활동반경을 더 넓혀 1965년부터는 '한국 아동문학 교단 동인회' 회원으로 활동한다. 신춘문예로 등단하기 2년 전의 일이다. 한국 아동문학 교단 동인회는 당시 아동문학계의 거목이었던 윤석중, 이원수 작가를 고문으로 두고 있었던, 아동문학계에서는 비교적 큰 규모를 자랑하던 단체였다. 당시 동인회에서 활동하던 사람 중에는 '우리말 바로쓰기'로 유명한 고 이오덕 선생도 있었다.

◆흙을 탐구하는 동시작가

최춘해 작가는 동시 작가들 사이에서 '흙의 시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1969년부터 '흙'이란 소재로 쓴 100편에 가까운 연작시 때문이다. 최 작가가 하고많은 자연의 소재들 중 '흙'을 선택한 이유는 "자연의 대단함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자연을 잘 대표하는 소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흙'을 소재로 1969년에 '세계 아동의 해 기념 동시 공모전'에서 금상을 받은 이후부터 '흙'이란 소재가 운명처럼 다가왔어요. 얼마 전 한 아동문학 세미나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농촌에 사는 아이들보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더 많은 탓에 자연을 잘 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도 흙을 주제로 계속 동시를 쓰실 건가요?'라고요. 저는 그렇게 대답했어요. '흙은 사람을 가르치고 인생에 도움을 줄 소재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 쓸 계획'이라고요."

◆"요즘 아이들 행복해 보이지 않아요"

우연인지 필연인지 최춘해 작가의 집은 초등학교와 가까이 있다. 40년 넘은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해 온 전직 교사이면서 동시 작가인 최 작가에게 요즘 아이들의 모습은 어떻게 보일지 궁금했다.

"예전에 제가 교편을 잡을 때만 해도 아이들은 자연을 동무 삼아 더불어 살면서 행복감을 많이 느꼈어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농촌에 살아도 자연과 그다지 친하지 않아 보이더군요."

최 작가는 자연과 친하지 않은 요즘 아이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특히 최근 한 일간지에 보도된 부모와 초'중학생 자식과의 갈등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아이를 안고 오는 엄마의 모습이나 엄마와 아이가 손 붙잡고 다니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때마다 차 안의 시선이 아이들에게 쏠리는 걸 보게 되죠. 그 모습과 아이들 모두를 귀엽게 보거든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학원 여러 개 다니느라 파김치가 된 모습을 더 많이 봅니다. 아이 표정이 지치고 피곤해 하는 모습이죠. 부모들이야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결국 아이를 통해 부모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하는 게 아닌가요?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 같네요."

◆내 생에 가장 행복했던 10년

대구경북지역에서 40년 이상 교편을 잡았던 최춘해 작가는 1998년 정년퇴임으로 교단을 떠나게 됐다. 퇴임 이후 최 작가는 한 가지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바로 무료 아동문학 강좌를 여는 것이었다.

"일종의 '봉사활동' 개념으로 시작하려고 했어요. 나라의 녹을 먹고산 입장에서 그것들을 어느 정도 되돌려줘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지요. 퇴직하고 바로 하려고 했던 건데 쉽지 않았어요. 공간을 찾는 게 힘들었거든요. 어떻게든 해 보려고 공간을 빌려줄 만한 이곳저곳을 수소문하다가 마지막에 한 출판사에서 공간을 빌려주더군요. 그런 우여곡절 끝에 시작을 했는데 첫해부터 글짓기를 배우고 싶다고 사람들이 꽤 많이 찾아왔어요. 더러는 저한테 배워 등단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최 작가는 '딱 10년만 해 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2003년 처음으로 무료 아동문학 강좌를 열었다. 그리고 10년째 되던 해인 2013년 강단에서 내려왔다. 지금은 최 작가에게 배운 제자들이 이 무료강좌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최 작가에게 강의를 들은 수강생들은 최 작가로부터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혜암아동문학회'를 조직해 대구경북지역 아동문학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최 작가는 "퇴직 후 아동문학 강좌를 열었던 10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한 수강생이 '아동문학을 배우면서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고 한 적이 있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런 분들이 있기에 계속 작품활동을 해 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아이의 마음으로 계속 자연을 바라보고 동시를 써 나갈 계획입니다."

최춘해 작가는 지금도 여러 동인지에 동시를 기고하고 있다. 다음 동시집을 발간할 계획에 대해 질문했을 때 "아직은 없다"며 "출간할 만큼 좋은 작품을 내야 되는 데 아직은 부끄러운 작품들이 더 많다. 후배들의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고 대답했다. 최 작가의 말에서 40년 넘게 글을 써 온 베테랑 동시 작가의 겸손과 후배를 보며 자극을 받는다는 현역 작가의 뜨거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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