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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성터…조선 4회 걸쳐 수축, 왜군 격퇴 요새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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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성(경상북도 기념물 67호)은 산 정상부와 계곡을 내성과 외성, 이중으로 둘러싼 석축 산성이다.절반 이상이 암벽으로 이루어져 몹시 험하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금오산성(경상북도 기념물 67호)은 산 정상부와 계곡을 내성과 외성, 이중으로 둘러싼 석축 산성이다.절반 이상이 암벽으로 이루어져 몹시 험하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금오산성(경상북도 기념물 67호)은 산 정상부와 계곡을 내성과 외성, 이중으로 둘러싼 석축 산성이다. 산성의 정확한 축성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고려시대 성터가 있었던 곳으로 조선시대에 4차례에 걸쳐 수축(修築)했다. 영조 때는 3만5천여 명의 병력이 주둔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석축의 둘레가 7644자(尺), 높이가 7자이고, 절반 이상이 암벽으로 이루어져 몹시 험하다. 고려 말에 선산, 개령, 인동, 성주 등의 많은 백성들이 왜구를 피해 이 곳에 들어와 살았으며 군사를 징발해 이를 수비했다고 한다.

1868년(고종 5)에 세운 23행 643자의 금오산성중수송공비(金烏山城重修頌功碑)에는 '통정대부전행공조참의 박문현(朴文鉉)이 비문을 짓고, 글씨는 이능화(李能華)가 썼다. 1868년 흥선대원군이 허물어진 금오산성을 수축(修築)했는데 관아와 군창을 새로 지어 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요새지가 되었고, 누곽의 규모가 백여 칸에 이르렀다'고 기록돼 있다.

1991년 금오산 주등산로 입구에 건립한 '금오산 사적비'에는 '이 성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동안 왜적에 대항하는 중요 거점지로 활용되어 '왜군의 북진을 막고 임란 7년을 종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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