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슬람 극단주의 광기, 공포와 슬픔의 현장] <7·끝> 멈추지 않는 해방 투쟁

코바니서 IS 완전 격퇴, 쿠르드 자치정부의 혈전

터키의 국경도시 수르츠에서 바라본 시리아의 코바니에서 폭연이 피어오르고 있다.
터키의 국경도시 수르츠에서 바라본 시리아의 코바니에서 폭연이 피어오르고 있다.

케말 악타쉬(56) 의원은 터키의 국경도시 수르츠에서도 800㎞ 떨어진 '호수의 도시' 반(Van) 출신의 쿠르드계 의원으로 앙카라의 터키 의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반면에 안드레아스 쉬더(45) 의원은 유럽의 심장부인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출신으로 지난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냈고 현재 오스트리아 의회에서 사민주의그룹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쉬더 의원은 오스트리아 의원 대표단을 이끌고 수르츠를 방문했을 때 케말 악타쉬 의원을 만났다. 두 사람을 한자리에 있게 만든 건 코바니에서의 전쟁 때문이다. 숨진 쿠르드 전사들의 장례식이 열리던 수르츠의 병원이 두 사람이 만난 장소다. 두 사람은 출신 배경부터 살아온 이력까지 완전히 다르지만 모두 코바니에서 싸우는 쿠르드 전사들과 쿠르드 민족의 미래를 염려하는 마음은 한가지로 통했다.

쿠르드 의원은 27년이란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장기수 출신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이지만 오스트리아 의원은 45년이라는 삶 전체를 되돌아보더라도 큰 고생을 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쉬더 의원은 고통받는 쿠르드 민족을 이해하고 이들의 삶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노력을 기울여온 유럽연합의 정치인이어서 그의 삶이 더욱 돋보인다. 그리고 악타쉬 의원의 경우 과거 쿠르드노동당(PKK)에 연관됐다는 이유로 27년의 옥살이를 했고, 쉬더 의원은 현재 PKK를 테러리스트 단체 명단에서 삭제하려고 백방으로 활동해왔다.

쉬더 의원에게 터키의 코바니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쉬더 의원은 "지금 이 자리에서 전부 말하기는 좀 곤란하다. 비엔나로 돌아가면 말할 것이다. 어쨌든 터키의 태도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다"라고 속내를 밝혔다. 또한 "우리(오스트리아 의원단)가 여기(수르츠)에 온 이유는 쿠르드 민족과의 강한 연대를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한 말을 고집스럽게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가 밝힌 강한 연대의 표현 방식은 병원에서 공동묘지까지 먼지가 풀풀 날리는 3㎞ 도로를 수천 명의 쿠르드인과 함께 행진하는 것이었다. 물론 악타쉬 의원을 비롯한 많은 쿠르드 정치인들과 법조인들도 함께 걸었다. 오른편에 보이는 코바니는 미군의 공습으로 폭연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묘지로 향하는 수천 명의 쿠르드인의 발걸음으로 도로는 먼지에 휩싸여 있었다.

지난해 9월 22일부터 25일까지 악타쉬 의원을 비롯한 네 명의 쿠르드 의원들은 제네바의 국제연합 건물 앞에서 코바니에서 학살 위기를 맞은 쿠르드 민족을 지원해줄 것을 전 세계에 호소하면서 사흘 동안 단식농성을 벌인 바 있다. 악타쉬 의원에게 단식농성을 한 이유를 물었다. 그는 절박한 심정을 밝혔다. "만약에 지금 이슬람국가(IS)에 패배해 쿠르드 민족이 학살당한다면 내일은 다른 민족이 IS에게 학살당할 것이다. IS는 인류가 완전히 무릎을 꿇을 때까지 결코 학살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단식한 이유는 IS의 문제가 단지 쿠르드 민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제임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필자는 다시 쉬더 의원에게 IS를 바라보는 유럽연합의 시각을 물었다. 그는 "IS는 인류와 세계의 적"이라고 정의했고 쿠르드 민족이 IS에 맞서 홀로 투쟁하고 있는 사실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만약에 쿠르드 민족이 IS를 물리친다면 쿠르드 민족의 미래에 대한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리라 생각한다"면서 쿠르드 민족의 염원인 민족국가 수립에 대한 문제까지 제기했다. 그의 답변은 인종과 민족은 달라도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는 같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다.

27년간 감옥 생활을 했던 악타쉬 의원은 단식투쟁이라면 아마 이골이 났을 것이다. 감옥에서의 단식투쟁으로 화제가 옮겨졌다. 그는 1980년 구속돼 사형 선고를 받고 2001년에 석방됐으나, 2009년 다시 구속돼 2014년 1월에 풀려났다. 모두 26년 9개월을 감옥에서 고초를 겪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단식투쟁 사례를 회상했다. "1982년 7월 14일, 반인간적인 고문과 구타, 열악한 수형 조건을 개선하려고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당시 많은 쿠르드 재소자들이 단식투쟁을 벌였고 네 명의 쿠르드 정치범들이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여 두 달 후인 9월에 목숨을 잃었다. 이들의 희생으로 교도소의 조건은 나아졌다. 그리고 2012년 9월 12일 교도소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다시 단식투쟁을 벌였다." 쿠르드 정치범들의 단식투쟁은 '죽음의 단식'으로 불리며 그동안 수많은 정치범이 비인간적인 터키 감옥에서 죽어갔다.

"터키는 PKK를 테러리스트 단체로 규정하며 많은 쿠르드 활동가들이나 정치가들, 언론인들을 장기간 투옥하고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27년간 감옥 생활을 한 악타쉬 의원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쉬더 의원에게 물었다. "우리도 PKK가 테러리스트 단체라는 명목으로 터키가 쿠르드 민족을 탄압해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PKK를 테러리스트 명단에서 제외하려는 캠페인을 벌여왔다. 앞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한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악타쉬 의원이 감사하다면서 쉬더 의원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의 몸짓은 주위 사람들 모두에게 환한 웃음을 선사했다.

쉬더 의원에게 코바니 문제를 유럽연합에서는 어떻게 풀 것인지 물었다. 그는"물론 제대로 된 해답은 없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단지 우리는 코바니의 쿠르드 자치정부를 지지하며 IS로부터 보호하기를 원한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최초로 자치정부를 민주적으로 수립하여 민주주의를 실행하고 있는 코바니 정부의 노력이 성공하기를 기원하며 이를 지원하고 확산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코바니에서 싸우는 쿠르드 전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인도적인 차원의 열린 길(humanitarian corridor)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또한, 유럽과 유엔 차원에서 쿠르드 민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인 방안도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코바니에서 쏟아져 나온 쿠르드 난민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그는 쿠르드 민족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들을 머릿속에 담고 있었지만 다 표현하지는 않았다.

두 의원은 서로 악수를 하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는 각자의 길을 걸었다. 이들이 돌아서 걷는 가뿐한 발걸음에서 쿠르드 민족의 미래에 밝은 희망이 보였다.

수르츠를 방문한 뒤 비엔나로 돌아간 쉬더 의원은 지난해 11월 20일 오스트리아 의회에서 다음과 같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IS 테러로부터의 코바니시에 대한 보호와 공급을 위해 (오스트리아) 연방정부와 특히 유럽연합의 연방장관은 국제연합과 유럽연합, 다른 세계기구들과 외교 관계에 있는 국가들에 이 문제를 알리고 현실화시킨다. 코바니에서 고통받는 민간인들에 대한 긴급 지원과 기독교인들과 예즈디인들에게 필요한 보호들을 현실화시킨다. 그리고 이들이 인도적인 차원에서 처참한 상황에 내몰리지 않게 확실하게 공급하고 코바니에서의 자기방어가 가능하도록 지원한다.'

1월 말 쿠르드민족은 코바니에서 4개월 만에 IS를 전격적으로 몰아내 코바니를 해방시켰고 IS의 종말이 가까웠음을 선언했다. 하영식 객원기자(국제분쟁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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