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동 24시 현장기록 119] 즐겁지만은 않은 봄맞이

꺾일 줄 모르던 동장군도 남으로부터 오는 꽃 소식에는 맥을 못 추고 물러날 기세다. 봄을 알리는 꽃은 종류도 다양하다. 개나리, 진달래, 모란, 민들레, 벚꽃, 유채, 찔레, 수선화 등에다 이름조차 모를 풀꽃까지 종류도 참 다양하고 이름만 들어도 향기롭고 기분까지 따뜻해진다. 나는 그중 진달래를 좋아한다. 분홍 색동치마를 입고 수줍게 앉은 듯한 진달래는 참꽃 또는 두견화라고도 불리며 어릴 적 나의 추억 한편을 채우곤 한다.

내가 근무하는 이곳 대구 달성군 현풍면은 이런저런 자랑거리가 참 많은 곳이다. 그중 비슬산의 참꽃 군락지를 손에 꼽을 수 있다. 해마다 봄이 되면 비슬산 정상에 자리한 참꽃 군락지엔 참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장관을 이루고, 이에 맞추어 '비슬산 참꽃 문화제'가 열려 전국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러나 사고와 맞서는 우리로서는 그리 반길 일만은 아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 당연 사건 사고도 많고 출동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비슬산은 해발 1,084m의 장중한 산세와 기암괴석, 울창한 산림을 갖추고 있는 명산으로 정상 부근에 자리 잡은 군락지까지 오르는 길은 10년 가까이 구조대 생활을 한 나에게도 결코 만만하지 않은 곳이다. 이곳으로 모여드는 관광객들을 보면 초보 산행자도 많고, 가족단위 관광객 또한 넘쳐난다. 지난해 4월 19일부터 21일까지 '비슬산 참꽃 문화제' 행사 기간 동안 산악사고 출동건수는 20여 건이 넘었다. 한 해 산악사고 출동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출동이 이 행사 기간에 발생했다.

작년 행사 첫날부터 산악구조에 애를 먹은 기억이 떠오른다. 대견봉 방향에서 유가사 방향으로 하산 중이던 산악회 여성 회원 1명이 탈진하는 바람에 산악회 회장이 119로 구조 요청을 했다. 현장에 도착하여 요구조자를 살펴봤더니 다행히 여성의 상태는 양호하였지만, "무릎이 아프다"며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우선 환자의 통증을 줄이기 위해 부목으로 다리를 고정시키고, 구조대원들은 이제 환자를 어떻게 이송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했다. 환자는 산악회에서 타고 온 버스가 있는 곳으로 이송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가는 등산로는 폭이 좁고 등산객도 많아 쉽게 이송할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결국 우리 구조팀은 교대로 환자를 업고 하산하는 방법을 택했다.

환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환자를 업고 내려오는 길은 참으로 고행의 길이다.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눈앞은 장마철 내리는 비처럼 땀이 시야를 가리고, 따가운 눈을 훔치는 것도 힘들어 연신 입에서 "헉~" 하는 신음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등에 업힌 환자는 "죄송합니다, 많이 무겁죠?"를 계속 되풀이하였다. 이렇게 옆에 동료들과 몇 번을 교대하고서야 우리는 환자를 안전하게 주차장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중년의 여성은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하였고, 우리 팀은 "괜찮습니다. 우리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며 안도의 웃음을 띠며 출동을 마무리하였다.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 출동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 가끔 우리 팀을 맞이하곤 한다. 다리가 아프다든지, 술을 많이 마셔 하산이 어렵다든지, 하물며 옆 사람이 구조차량을 이용하는 것을 보고 걷기가 힘드니 좀 태워 달라고 하는 등 모여든 사람만큼이나 그 사연도 구구절절하다. 등산을 하기 전에 자신의 체력 상태를 파악하고, 무리한 등산은 피해야 한다. 또 정해진 등산로를 이용해 줄 것을 등산객들에게 항상 입버릇처럼 당부드리곤 한다.

'힘들고 도움을 필요로 하니깐 우리를 찾았겠지'라고 스스로를 다잡아보지만, 더 긴급한 출동을 해야 할 때 공백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출동을 나가면서 인력에 공백이 생기면 2차적으로 인근지역에서 출동하기도 한다. 문제는 도움의 손길이 오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골든타임을 놓쳐버려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봄을 맞이하고 꽃놀이를 즐기기 위해 산을 찾는 것은 좋다. 다만, 산행을 위한 최소한의 장비와 체력에 맞는 산행계획을 세우고, 음주산행이나 등산 중 음주행위 등은 자제하여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은 어떨까? 단순한 출동을 요청하는 그 순간 절실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나의 가족이나 친구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이화균 대구 달성소방서 119구조대 소방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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