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이 아직 '패션'이라는 반열에 오르지 못했던 1990년대 초반. 내의 전문 업체 '백양'은 내의 브랜드 'BYC'를 패션화하는 데 성공하면서 대박을 만들어낸다. 흰색 내의, 빨간색 내복으로 상징되던, 당시만 해도 감추고 싶은 패션 아이콘인 내의에 패션을 입히면서 새로운 브랜드 만들기에 성공한 것이다. 1990년대 초반의 '창조 경제'였다.
이명박정부에서 무려 3년 동안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연예인에서 공직자로 대변신을 이뤄냈던 탤런트 유인촌 씨가 BYC의 대히트를 만들어낸 CF 주인공이었다. 1990년대 초반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유인촌 씨가 CF에서 외쳐대던 "아하 BYC!'를 기억할 것이다. 유 씨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억대의 출연료를 받으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 씨가 "아하, BYC!"를 외치고 나서자 사람들은 "이제 속옷도 브랜드 제품을 입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기 시작했다.
속옷 시장이 맹렬하게 팽창하기 시작하고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변모하자 백양은 내친김에 백양이라는 회사 간판을 내리고 제품 브랜드명이던 BYC를 회사 이름으로 만들었다. BYC 브랜드의 파괴력이 당시 그만큼 강했던 것이다.
백양은 BYC를 밑거름으로 라이벌 쌍방울을 제치고 내의를 넘어선 명실상부한 패션 업체로 정착했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돼 있는 BYC는 지난 10일 종가 기준으로 28만1천원의 주가를 기록하는 중이고 내년이면 창사 70주년을 맞을 만큼 '롱런' 중이다.
경상북도를 담당하는 기자가 뜬금없이 BYC를 꺼낸 이유는 경북도에도 BYC가 있기 때문이다. B(봉화), Y(영양), C(청송). 이들 3개 군은 경북도청 사람들 사이에 BYC로 불린다. 이른바 오지 트리오다.
경북의 오지 트리오인 BYC는 역시 지역 발전이 한참 더딘 것으로 평가받는 전라북도의 '무진장'(무주'진안'장수) 트리오와 함께 전국 오지 트리오의 양대 축이다. BYC 트리오와 무진장 트리오의 차이가 있다면 BYC는 고속도로가 지나지 않는 '오리지널 오지'이고, 무진장 트리오는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오지라는 점이다.
BYC, 이들 3곳은 오지 트리오답게 모든 통계에서 도내뿐만 아니라 전국 대다수 시군에 밀린다. 영양의 경우, 인구가 1만8천 명뿐으로 섬인 울릉도를 제외하고는 인구가 도내에서 제일 적다. 대구시내 아파트 밀집지역 한 곳의 인구보다도 적다. 영양군의 한 해 살림살이 규모는 2천200억원으로 도내 곳간 중 최소다.
봉화는 3만4천여 명, 청송에도 고작 2만6천여 명만이 산다. BYC 트리오를 다 합쳐도 대구시내 한 개 구(區) 인구도 안 된다.
군청에서 일하는 공무원들마저 짐을 싸는 사례가 많았다. 지난 5년간 봉화군 24명, 영양군 16명, 청송군에서 12명의 공무원들이 BYC를 떠나 경북도 본청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현실은 그랬다. 하지만 "내의가 무슨 패션이냐"고 다그치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던 시절, BYC가 내의에 창조 경제를 입혔듯이 우리 지역 BYC도 요즘 기존의 상식에 딴지를 걸고 있다.
전체 면적의 83%가 원시림인 봉화는 지난해 47년 만에 처음으로 인구가 늘었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베이비붐 세대의 귀촌 행렬을 끌어들인 것이다.
영양군은 산부인과 병'의원 한 곳 없는 열악한 의료 환경이지만 '영양군 아기는 군청이 키워준다'는 구호를 내걸면서 경북도내 군(郡) 단위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최근 10년간 신생아 출생 숫자가 늘어난 곳이 됐다.
청송군은 온도 차가 큰 기후가 사과 산지로는 최적이라는 분석을 밑거름으로 청송군 세출의 무려 22%를 사과에 투자했다. 덕분에 길거리 사과 판매상들이 모두 '청송 사과'라는 팻말을 붙여놓을 만큼 청송 사과는 전국적 브랜드로 올라섰다.
BYC가 경영학 책에서 성공 사례로 꼽히듯, 행정학 기본서에 우리 지역 BYC가 지역 혁신 사례로 등장하는 날이 올까? '아하! BYC!'라는 제목을 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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