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뉴욕, 청춘…. 이 세 단어의 조합은 낭만적으로 들린다. '비긴 어게인'처럼 흥행을 보장하는 조합이기도 하다. 화려한 뉴욕 하늘 아래 고군분투하며 희망을 붙들고 살아가는 재능 있는 선남선녀의 낭만과 로맨스를 기대한다면, 이 영화는 아니다. 뉴욕이라는 치열한 경쟁 공간에서 스무 살 음악학교 학생이 중년의 폭군 스승과 벌이는 대결은 음악을 편안히 감상하게 하지 않는다. 음악은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투쟁 도구이다. 세상을 헤쳐나가는 무기로서의 음악에 모든 것을 건 두 사람의 대결은 액션 스릴러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기 그지없다. 심장을 뛰게 하는 영화라, 닥치고 강추!
이제 갓 서른 살이 된 신인감독 다미엔 차젤레의 장편 데뷔작으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색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편집상, 음향상, 남우조연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했다. 올해 아카데미 최대의 화제와 이변을 몰고 온 작품으로 기대감이 남다르다. 이미 이 영화는 세계 인디영화의 메카인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받으며 화제를 낳았고,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J.K. 시몬스는 받을 수 있는 연기상은 몽땅 휩쓸어 50개가 넘는 트로피를 챙겼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받게 되는 압도적인 인상은 신예 마일즈 텔러와 대결을 벌이며 조화를 이루는 그의 노련한 연기 덕이다.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는 스무 살 음악대학 신입생 앤드류(마일즈 텔러)는 우연한 기회로 누구든지 성공으로 이끈 최고의 실력자이지만 또한 동시에 최악의 폭군인 플렛처 교수(J.K. 시몬스)에게 발탁되어 그의 밴드에 들어가게 된다. 폭언과 학대 속에 좌절과 성취를 동시에 안겨주는 플렛처의 지독한 교육 방식은 천재가 되길 갈망하는 앤드류의 집착을 끌어내며 그를 점점 광기로 몰아넣는다.
제목 '위플래쉬'는 영화 속에서 밴드가 연주하는 재즈곡이다. 더블타임 스윙 주법으로 완성된 질주하는 독주 부분이 매력적인 곡으로 우리말로는 '채찍질'을 뜻하며, 영화에서 이중의 의미를 가진다. 학생을 채찍질하는 독한 선생이 선택하는 최상의 곡인 것이다.
성공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앤드류가 홀로 드럼을 연주하는 첫 장면을 바라보는 플렛처의 시점 장면은 마치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 스타일처럼 묵직하다. 마지막 승리를 향해 물러서지 않으며 음악을 연주하는 두 사람의 대결 장면은 액션영화의 결투 장면처럼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하버드 출신의 차젤레 감독은 그 자신이 음악학교에서 겪었던 사건들을 드라마로 엮어낸다. 빠르게 쇼트가 넘어가는 편집 스타일, 현장감 있게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헨드헬드 카메라, 누아르 스릴러처럼 보이게 콘트라스트를 준 조명 등 모두 뛰어나지만 무엇보다도 이야기를 엮어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놀라운 재능이다. 차젤레는 관객을 흥분과 긴장감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마지막 순간에 승리감을 맛보게 하는 연출력을 인정받아 닐 암스트롱의 전기 영화 '라라밴드'의 연출로 스카우트되었다.
영화는 교육에서 훈육과 자율이라는 고리타분한 이분법을 가지고 세대 간의 대결이라는 흥미진진한 이슈로 탈바꿈시킨다. 자유분방한 재즈에 너무 엄격하게 접근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재즈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려는 게 아니다. 필자는 이 영화에서 중년 세대에게 도전장을 던지고 멋지게 대결하는 젊은 세대의 포효를 본다. 주눅 든 20대 청춘에게 선사하는 선물 같은 영화다. 저항하고 도전하는 것이 젊은이의 특권이라는 점을 잊고 사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영화는 고전적인 이상주의를 펼친다.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한갓 판타지 세상 속 이야기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나, 청춘은 희망을 가져야 청춘인 것을.
아픈 청춘들이 영화 속 승리에 함께 축배를 들고, 다시 세상에 뛰어들어 기성세대와 대결할 에너지를 응축하길 바란다. 도전하는 그대들이 작은 위안과 힘을 얻기를!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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