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에 '새 식구'가 늘고 있다. 문경에서 살고 싶어 귀농'귀촌'귀향을 하는 이들이다.
특히 다른 시'도의 경우, 귀촌보다는 귀농이 많지만 문경은 귀촌이 귀농을 앞지르고 있다. 국민관광지인 문경새재 등의 휴양 자원과 문화재가 풍부한데다 외지인들과 어울릴 줄 아는 열린 마음을 지닌 주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초가산간 집을 짓는 새 식구들을 만났다.
◆홍철 대구가톨릭대 총장
"문경은 공기도 좋고, 인심도 좋아요. 문경사람들은 외지인들하고 잘 어울려 살 줄 아는 분들이죠. 열린 마음을 가진 아름다운 도시라 할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에 너무 적합한 곳이지요."
홍철(70) 대구가톨릭대 총장은 문경 출신이 아니다. 고향은 포항이다. 그런데 2011년 문경의 한 작은 마을에 조그마한 집을 마련했다.
"10여 년 전 대구경북연구원장으로 있을 때 문경에 반했죠. 주흘산과 문경새재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죠."
그의 문경 첫 출발은 소박했다. 농가주택을 세 얻어 아내와 함께 농촌생활을 시작한 것.
하지만 살아보니 욕심이 났다. 시간이 갈수록 문경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래서 아예 인근의 땅을 사 2년 전 100㎡ 규모의 집을 지었다. 홍 총장은 평일은 대구에서, 주말은 문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직은 '주말 귀촌'인 셈. 다니던 성당은 문경성당으로 옮겨 5년째 다니고 있다.
그는 지난 정부에서 맡은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을 그만둔 직후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새로 지은 문경의 집에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대구가톨릭대 총장을 맡게 되면서 할 수 없이 100% 문경 정착을 잠시 미룬 채 주말에만 문경의 집에서 보내고 있다.
"어쩔 수 없죠. 평일엔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고 주말이면 어김없이 문경의 흙냄새를 맡고 있죠. 텃밭도 일구고, 집을 관리하느라 주말도 모자랍니다. 사귀어 놓은 마을 친구들도 만나야 하고, 앞으로 할 일이 많네요."
홍 총장은 서울대를 졸업한 후 청와대 비서관, 건설교통부 차관보, 국토개발연구원장, 대구경북연구원장 등을 지낸 대한민국 국토개발의 권위자다. 그런 그가 인생 2막 무대를 문경으로 선택했고 자연 그대로인 문경에 대한 애정을 아끼지 않는다.
"문경은 영남과 수도권의 관문으로, 조선의 문경새재가 그러했듯 많은 사람이 문경을 찾을 겁니다. 주민들의 개방적인 의식 역시 길의 고장 문경의 미래 자산입니다. 열린 마음을 가진 도시가 그리 많지만은 않죠. 또한 문경은 서울과 대구에서 1시간 30분이면 족히 올 수 있다는 지리적 여건을 갖고 있습니다. 문경의 큰 자산입니다. 문경새재, 백두대간 4대 명산 등 엄청난 관광자원까지 가진 문경은 미래의 도시 가치가 갈수록 커진다고 봐야 되겠죠."
그는 '도전해라, 그리고 최선을 다해라. 항상 더불어 살아야 한다'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문경에서의 그의 삶이 또 다른 도전이자 최선의 선택이 아닌가 싶다.
◆김홍락 전 볼리비아'과테말라 대사
"'레알~문경' 더 좋은 데가 없었습니다"
문경 가은읍 전곡리의 한 자그마한 마을엔 '이색 박물관'이 있다. 바로 잉카마야박물관. 가장 한국적인 자연과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문경에 가장 이타적인 문화가 자리한 것. 박물관은 중남미 문화의 모든 것이 전시되고 있다.
이색 박물관의 주인공은 김홍락(63) 전 볼리비아 대사와 부인 주미영(57) 문경 잉카마야박물관장 부부. 김 전 대사는 30여 년의 외교관 생활을 접고 지난해 여름 전곡리의 옛 초등학교를 매입한 뒤 리모델링해 터전을 마련했다.
김 전 대사는 1979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후 2년 전 퇴직할 때까지 30여 년의 외교관 생활 중 20년을 중남미에서 보냈다. 대구에서 태어나 자란(경북대 사대부고 졸업) 그는 성균관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스페인어를 공부해 외교관 생활을 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잉키와 마야문명에 관심을 가졌다.
자료와 유물 수집이 취미가 됐고, 퇴직 당시 모은 자료가 토기류 1천 점, 조각류 100여 점, 책 200여 점 등으로 박물관 수준에 이르게 됐다.
퇴직 후 그는 박물관 설립에 들어갔다.
"볼리비아 대사 시절 문경을 알게 됐죠. 퇴직을 한 다음에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문경만큼 좋은 데가 없었습니다. 문경의 빼어난 자연환경이 뇌리에서 잊히지 않은데다 사계절 몰려드는 관광객들 때문이었죠. 박물관 운영과 농촌생활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김 전 대사는 박물관 설립 전 문경새재 옛길 박물관에서 '문경의 옛길과 잉카의 옛길'이라는 주제로 잉카마야 유물을 6개월 전시했는데 대성공을 거뒀다. 그는 아내와 함께 박물관 설립을 위해 주변 지인 30여 명과 함께 사단법인 중남미문화포럼을 만들었다.
잉카마야박물관은 중남미문화포럼이 운영하며, 김 전 대사가 이사장을, 부인이 박물관을 맡고 있다. 2층 규모의 박물관은 잉카관, 마야관, 고산지대 주민들이 쓰던 모자인 유추관, 천사관, 카페 등으로 꾸며져 있다.
"박물관 설립을 위해 노후자금을 모두 투자했죠. 폐교 운동장에 자그마한 오토캠핑장도 만들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박물관이 아닌 만큼 박물관을 찾는 모든 이들과 함께하는 문화의 전당으로 만들고 싶네요."
김 전 대사는 "가장 한국적인 문경에 중남미 문화를 접목시켜 문경의 문화'관광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경오미자김 김경란 대표
"스스로 농촌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는 각오와 노력만 있다면 문경은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준비된 '귀농도시입니다."
문경오미자김을 개발한 김경란(47) 씨는 문경 창업형 귀농 여성 1호다. 단순히 전원생활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문경에서 창업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는 문경에서 태어났지만 창원, 수원 등 외지로 나가 학교를 다녔고, 직장생활도 했다. 그리고 2012년 귀농해 1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영농법인 문경미소를 창업, 전남 완도김에다 문경오미자를 접목한 '문경오미자조미김'을 최초로 개발했다.
지난해 9월 출시된 지 1년도 안 된 문경오미자김이 추석 명절 경북지방우정청 쇼핑몰 판매량 집계 결과, 동종업계 주문 1위를 차지하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경북지방우정청 쇼핑몰에는 외지산 유명 조미김들이 즐비한데 오미자김 덕분에 사상 처음으로 경북산 조미김이 최고 성적을 올린 것이다.
특허출원이 된 오미자김은 오미자의 다섯 가지 맛 중 짠맛을 살린 분말을 첨가해 일반 조미김에 비해 소금양을 무려 30% 이상 줄인 저염 건강식품으로 평가받는다.
또 이 분말에는 항산화 작용을 하는 건오미자씨가 다량 함유돼 있어 참기름과 김의 산패를 지연시키는 효과를 낸다. 기름 찌든 냄새 없는 신선한 맛이 특징이다.
김 대표는 문경오미자의 6차 산업화에 초점을 맞췄다. 오미자청도 생산하고 있다. 귀농 준비와 관련, 철저하게 대비를 한 덕에 시행착오는 별로 없었다고 말한다. 지난해 매출은 8억원. 갈수록 소비자들의 반응이 커지고 있고, 국내는 물론 중국 선양과 수출계약까지 체결한 상태다.
특히 김 대표는 문경오미자김 전부를 전남 완도김으로 사용해 대박을 터뜨리자 완도군수를 찾아가 전복 가공품 등 완도 특산물의 원료에도 문경오미자를 사용토록 하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사업 성공은 모두 '고향 덕'"이라며 겸손해했다. 문경시에서 오미자에 대한 특구 지정 지리적 표시제를 구축해 놓았고, 문경에서 성공시켜 놓은 오미자의 명성이 큰 힘이 됐다는 설명이다.
"문경에 와서 열심히 사니까 시를 비롯해 각 사회단체 등에서 다들 도와주고 있습니다. 정말 고향에 잘 돌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지홍기 전 영남대 부총장
"문경 귀향 너무 행복합니다."
지홍기(67) 전 영남대 부총장은 문경이 고향이다. 마성초, 문경중, 문경종합고등학교 등 학생 시절을 문경에서 보낸 '토박이'인 셈. 대학 진학과 직장생활 때문에 문경을 오래 떠나 있었지만 마음만은 항상 고향마을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지난해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고향마을로 돌아왔다.
"고향에 오니까 더 바쁘네요. 농사일(그는 대추농사를 짓고 있다)에다 대학 강단과 전문학회 활동 등으로 쌓은 지식을 문경 발전을 위해 보태다 보니 하루 24시간도 모자라는 것 같습니다."
지 전 부총장은 현재 문경시 정책자문단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귀향 후 고향을 위해 본격적인 재능 기부에 나선 것이다. 문경시정책자문단은 지 전 총장을 중심으로 문경 출신의 교수, 연구원 등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문경 발전과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사단법인이다.
그는 농사 틈틈이 시간을 내 대학 때의 전공(토목)을 살려 고윤환 문경시장은 물론 시청 공무원들에게 문경 발전 방향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또 지역의 문화원, 향토사연구소 등 지역 단체들을 대상으로도 다양한 강연을 해오고 있다.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 고향에서의 삶은 어쩌면 인생의 두 번째 도전인 셈이죠. 농사 잘 짓는다는 소리도 듣고, 재능 나눔도 열심히 한다는 칭찬도 듣고 싶네요. 지금 고향 문경에서의 삶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문경 고도현 기자 dor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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