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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어울林

지 안
지 안

줄기에 가지가 달렸던 흔적을 잇는 '옹이'는 나뭇결이 단단해서 톱질이 어렵다. 전통가구를 만들 때 나무의 쓰임을 보면 사람의 그것과 닮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무가 숨을 쉬기 위해 줄기 사이로 알알이 뻗은 땀구멍은 땅속 영양분을 흡수하던 물줄기의 흔적이다. 결을 따라 대패질을 하면 부드러운 판재를 생산할 수 있지만, 결의 반대 방향으로 대패질을 하면 거스러미가 일어나기 일쑤다. '온유한 자가 땅을 지배하고 기업을 세운다'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성경의 한 구절에도 거스러미의 진리는 숨어 있다.

주기만 하는 사랑에도 기쁨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무의 일생은 인간에게 베풀기만 하고 끝나는 것 같아 그 미덕에 감사할 따름이다. 잘 영근 열매로 기쁨을 주고 때론 그늘막과 산소를 제공하고 생활을 위한 자원으로 혹은 팔만의 대장경으로 부처님의 설법을 전하며 생명력을 부여받는, 문화와 예술적 가치로 인간을 이롭게 하는 나무. 이 아가페적인 사랑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신념을 본받고 있는 것인지. 이만저만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보고 싶은 사람을 그리워할 여유도 없이 흐르는 세월 앞에, 나무는 죽어 세 뼘 남짓한 그루터기로 남아 인간에게 쉼표를 던진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이처럼 기쁨만 줄 수 있을까. 인간이 나무처럼 아낌없이 베풀고 사는 길은 득도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속세를 지고 출가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일까. 그렇게 되면 공양 그릇으로나마 비움의 철학을 깨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임종을 앞둔 스승이 제자를 앞에 불러 놓고 입을 벌려 보여주며 물었다. "입속에 이는 다 빠지고 혀는 남아있는 이유를 알겠느냐?" 이에 제자가 답하였다. "이는 단단하기 때문에 성질에 못 이겨 다 빠져버리고, 혀는 부드럽기 때문에 오래 남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유능제강'은 '부드러움이 결국 딱딱함을 이긴다'는 이치다. 사랑을 나눌 때 부드러운 속삭임이 되기도 하고, 독살 맞은 뱀의 혀처럼 살인의 비수가 되기도 하고, 낯선 적막을 깨는 웃음을 주는 것도 혀의 몫이다. 이에 부드러움은 독선과 아집을 걸러낸 순수물질이라 수액의 가치가 남다르다. 자신을 내리찍는 도끼에도 향을 묻히는 향나무처럼, 재산이 없어도 베풀 수 있는 불교의 '무재칠시', 즉 일곱 가지 보시 및 설법이 있다.

1. 화안시, 밝은 얼굴로 남을 대하는 것.

2. 언시, 말로 베푸는 것.

3. 심시, 마음을 열고 온화함을 주는 것.

4. 안시, 따뜻한 눈빛으로 보는 것.

5. 신시, 몸으로 베푸는 봉사.

6. 좌시, 자리를 양보하는 것.

7. 찰시, 남의 마음을 헤아려 돕는 것.

마음에 낸 상처는 대패질로도 메우지 못하는 법이다. 누군가에게 상처 아닌 부드러움의 미덕을 베푸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뮤지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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