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문의 한시 산책] 동자는 詩를 위해 時를 기다렸다

[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

은자를 못 만나고-가도(賈島)

소나무 아래서 동자에게 물었더니

스승께선 약 캐러 가셨다 하네

계시기야 이 산속에 계시겠지만

계신 곳을 알 수 없네, 구름이 깊어

松下問童子(송하문동자) 言師採藥去(언사채약거)

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 雲深不知處(운심부지처)

*言(언): 제2구에만 걸린다고 보는 견해와, 제4구까지 다 걸린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데, 여기서는 앞의 견해를 따랐음.

퇴고(推敲) 고사로 유명한 당나라의 시인 가도(779~843). 그는 일생 동안 시라는 나무에다 목을 매달고, 처절하게 몸부림을 쳤던 시인이다. 해마다 섣달 그믐날 밤이 되면 1년 동안 지은 시를 모두 상 위에다 올려놓고, 향불을 피운 후에 두 번 절을 하며 술을 올렸다고 하니, 가도에겐 시가 종교였던 게다.

시를 종교로 모셨던 가도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일단 동자를 만나는 장소부터가 아주 멋지다. 알다시피 소나무는 그윽한 운치와 청정한 분위기를 대표하는 나무. 이 시의 분위기를 망치고 싶으면 소나무 대신에 다른 나무를 넣어보면 된다. 대추나무를 넣어보든지, 꿀밤나무를 넣어보든지…. 소나무 아래서 만난 사람이 은자를 모시는 동자라는 것도 아주 멋있다. 동자가 그때 보글보글 차를 끓이고 있었거나, 선약(仙藥)을 달이고 있었을 것이라는 상상이 가미되면 더욱더 멋있고. 이 대목에서 동자 대신에 나무꾼을 만났다면, 사냥꾼을 만났다면, 나물 캐는 아지매를 만났다면 시가 엉망이 되었겠지 아마.

그때 은자가 집에 있었다면 정말 큰일이 나버릴 뻔했다. 그랬다면 은자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가 돌아왔다는, 아주 싱거운 시가 태어났을 가능성이 매우 높거든. 게다가 은자가 저 높은 산에 약을 캐러 가신 것도 엄청 다행이다. 혹시 국밥을 사먹으러 시장에 갔다면, 이웃집에 고스톱을 치러 갔다면, 뒷산에 산토끼를 잡으러 갔다면, 이 시가 도대체 어떻게 되었겠어. 그리고 그때 만약 뒷산에 구름이 깊지 않았다면, 그것도 보통 큰일이 아니다. 구름이 깊어야 어디 계신지를 알 수가 없어서, 끝내 은자를 찾을 수가 없거든. 게다가 자욱하게 끼어 있는 구름이 없었다면, 오리무중의 초월적 공간에서 노닐고 있는 은자의 드높은 정신세계를 도대체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어.

그러고 보면 신운(神韻)이 감도는 이 절묘한 시가 태어나기 위해서 동자는 소나무 밑에서 시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시인이 올 줄 알고 은자는 약을 캐러 나가버렸고, 약 캐러 간 산에는 흰 구름이 자욱하게 끼어 있었어.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 같아. 시라는 나무에 목을 매달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 시인에게, 시의 신(神)이 특별히 이와 같은 구도를 만들어 준 거라고 봐야 되겠지.

이종문 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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