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학스님 지음/ 좋은인연 펴냄
아침, 배드민턴을 치면서 행자들에게 말했다.
"여러분들이 처음 배드민턴 라켓을 잡았을 때는 룰도 잘 몰랐다. 그렇지만 지금은 실력들이 대단하다. 도를 닦는 것도 그와 같아서 어제 오늘, 하루 상간은 표시가 나지 않지만 보름, 한 달의 기간을 보면 차이가 난다. 그 누가 뭐라 하더라도 잘 견뎌야 한다, 설령 주위에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은 그저 객으로 지나칠 뿐이다. 인생은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 3년 후, 은사인 내가 무문관에서 나올 때까지 열심히 정진들 하길 바란다."
……
오늘의 일종식
강낭콩 섞인 밥, 유부초밥, 두부된장국, 호박나물, 연근, 바다나물, 청포도, 복숭아
이른 아침 석 장의 런닝셔츠에 먹물 들인다. 백반, 소금, 식초를 사용한다. 먹물 들인 회색옷. 나는 늘 회색을 공(空)의 색깔이라고 말한다. 회색옷을 만드는 작업을 하면 신심이 돋는다. 스스로 먹물 들인 회색옷을 입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힘이 난다. 옷 석장이면 3년은 거뜬히 난다. 오늘의 이 일기는 시자 편을 통해 무문관 봉창 밖으로 나가는 약 백일간의 기록이다.
'무문관 첫 백일 일기', 그 끝 지면을 빌어 적는다.
우학 스님이 천일(3년) 무문관 청정수행결사를 시작한 것은 2013년 음력 4월 15일(2016년 음력 1월 15일 종료). 그 첫 백일 동안의 수행일기가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책으로 나왔다. 무문관(無門關)은 '문이 없는 집'이란 뜻으로 폐관(閉關)과 통하는 말이다. 그래서 무문관 수행을 폐관수행이라고도 한다.
그럼 폐관수행은 대체 왜 하는 것일까?
우학 스님은 '수문견성'(守門見性'문을 지키면 성품을 본다)이라고 답한다. 복잡하고 혼탁한 세상살이에서 자기 문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비단 스님뿐만 아니라 재가 신도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저자는 이 글을 통해 모든 이들이 공감과 법열을 느끼기를 기대하고 있다.
무문관은 한마디로 공덕의 창고인 만큼 여러 가지 공덕이 있다는 설명이다. 무문관은 무엇보다 그 공간에 있는 자체가 무문무설(無問無說)의 공덕이 있다. 듣지 않고 말하지 않는 공덕이다. 사람들은 너무 많은 것을 듣고, 너무 많은 것을 말하기 때문에 '참나' '자기 부처'를 등질 때가 있다. 또한 무문관은 무해무질(無害無嫉)의 공덕이 있다. 너무 많은 활동, 큰일을 하다 보면 음해와 질투를 받기도 하고, 하기도 하는데 무문관은 외부활동이 중지된 곳이라서 그런 시빗거리에서 근원적으로 벗어나 있다. 그래서 음해도 없고 질투도 없다.
무포무비(無飽無肥)의 공덕도 빠뜨릴 수 없다. 하루 한 끼만 먹기 때문이다. 음식뿐만 아니라 무문관 안에서는 과도한 탐욕심을 낼 수도, 그 탐욕심을 배불리 저장할 이유도 없게 된다. 명예가 아무 소용없고, 헛된 욕망이 다 불필요한 곳이기에 조건 없이 다 내려놓는 편안함이 그곳에는 있다. 자연히 무명무욕(無名無慾)의 공덕이 따른다.
게다가 시간(宙)에 쫓길 이유도 없고 공간(宇)을 의식할 이유도 전혀 없는 곳이 무문관이다. 시간과 공간이 정지된 셈이다. 그래서 무문관 수행에는 무주무우(無宙無宇)의 공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을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아서 오로지 자기 세상이고, 마음껏 수행할 수 있는 곳이 무문관이다. 잘 적응하기만 하면 3년이 아니라 10년도 문제없지만, 근기가 모자라면 하루도 견디기 힘든 곳이다. 이런 무문관 생활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무문관 생활에는 그 어떤 얻음도 없고, 그 어떤 잃음도 없다. 공(空)의 세계가 본래 무득무실(無得無失)이어서, 그저 본바탕 그대로 화평(和平)이 있을 뿐이다.
저자 우학 스님의 소박한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무료하기만 할 것 같은 폐관의 수행이 결코 무료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 어디에 견주어도 치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문은 닫혔으나 열린 눈과 열린 마음의 무문관 그곳에는 대우주의 아름다움과 질서정연함이 펼쳐져 있음을 사진으로 느낄 수 있다. 1만4천원, 262쪽.
석민 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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