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의 일상이 이 학원 저 학원 다니는 것이라면, 옛날 아이들의 일상은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는 것이었다. 동네를 '다녔다'기보다는 '쏘다녔다'(쏘다니다: 아무 데나 마구 분주하게 돌아다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학원 간 이동에 정해진 경로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곧장 그날 저녁 크게 혼쭐이 난다. 하지만 옛날 아이들의 이동 경로는 그날그날 달랐다. 골목길은 그 자유로운 모험과 탐험의 길이었다.
이러한 이동을 가로막는 장애가 하나 있었다. 이 동네와 저 동네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이었다. 여름이라면 아이들 중 일부는 수영이라도 해서 건널 수 있었지만, 대개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래서 지난 세기 강에 하나 둘 지어진 '다리'(교량)는 골목길의 혁신적인 확장이었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대구를 가로지르는 큰 강 '금호강'과 인접한 동구와 북구에 그런 흔적을 가진 다리가 몇 곳 있다.
◆대구의 다리 경관 명소, 아양교
'이 다리는 봄부터 여름 동안 유원지로 또 납량지(피서지)로 찾는 동촌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건설됐다. 또 명소가 없는 대구 금호강에 경치 하나를 더했다.' 1932년 12월 8일자 한 일간지에 실린 대구 동구 아양교 준공 소식 기사 내용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현재의 동촌유원지 일대가 서쪽의 달성공원과 함께 대구 사람들의 오래된 휴식처임을 알 수 있다.
아양교는 대구와 바깥 인접 지역을 이어주던 다리이기도 했다. 상희구 시인은 '동촌 아양교'라는 시에서 "아양교는 대구에서 영천, 경주, 포항, 영덕 등 동남부 지역으로 빠져나가던 관문 역할을 했다. 영천 돔베기를 사러 가고, 경산 팔공산 갓바위에 기도하러 가던 길이었다"고 했다. 물론 아양교는 인근 주민들이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다니던 골목길 다리 역할을 가장 톡톡히 했다. 상희구 시인은 "아양교는 동촌, 반야월, 서촌, 불로동 등 주변 일대를 연결해주던 다리"라고 설명했다.
아양교는 지은 지 50여 년만인 1980년대 초에 폭을 35m, 길이를 221m로 확장하는 공사를 거치는 등 쓸모를 계속 인정받았다. 이후 1970년대에 제2아양교, 1990년대에 제3아양교가 원조 아양교 양옆에 들어섰다. 같은 이름의 연작 다리가 3개나 건설된 것. 1999년 9월 대구시의 공공시설물 명칭 개정 작업으로 제2아양교는 화랑교로, 제3아양교는 공항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세대교체 성공한 금호강 다리들
'아양교 삼 형제'가 금호강 물길을 따라 연달아 자리한 공항교~아양교~화랑교 구간은 대구를 대표하는 다리 경관 명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아양교 주변 일대는 조선 초기 유학자 서거정이 '대구 10경'의 제1경인 '금호범주'를 읊었다고 전해질 정도로 오래전부터 경치가 뛰어났던 곳이다. 일찍이 동촌유원지가 자리 잡은 까닭이기도 하다. 이곳에 놓인 다리들도 그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아양교를 중심으로 남동쪽에는 '동촌구름다리'라고 불린 인도교가 있었다. 민간사업자들이 1968년 관광용으로 세워 40여 년간 통행료를 받으며 운영했다. 소풍 온 아이들, 데이트하는 젊은이들, 나들이 나온 가족들 등 모든 세대로부터 금호강의 이색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코스로 인기를 얻었다. 그러다 2012년 노후를 이유로 폐쇄됐고, 결국 철거됐다. 철거 직전, 이 다리의 전통을 잇는 다리가 바로 옆에 생겼다. 역시 인도교인 '해맞이다리'다. 출렁거리는 다리를 건너며 느끼던 '아찔함'은 되살리지 못한 점이 아쉽다.
아양교를 중심으로 북서쪽에는 '아양철교'가 있었다. 아양교(1932년)와 비슷한 시기인 1936년에 지어져 대구선 철도를 연결하던 곳이다. 그러다 2008년 2월 대구선이 옮겨가면서 열차 운행이 중단된 이후 흉물처럼 남아 있었다. 이곳은 아양철교의 역사성을 감안, 철거되지 않고 그대로 리모델링됐다. 2013년 10월 다시 문을 연 '아양기찻길'이다.
이곳은 더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 인도교로 탈바꿈했다. 그런데 기존 철로를 없애지 않고 그대로 살렸고, 위에는 유리가 깔렸다. 걸으면서 밑을 내려다보면 쇠로 된 레일, 나무로 된 침목, 그리고 10여m 밑에 흐르는 세찬 금호강 강물이 아찔함을 선사한다. 그러고 보니, 동촌구름다리가 선사하던 아찔함은 해맞이다리는 아니더라도 이웃해 있는 아양기찻길이 어쨌든 전승하고 있는 셈이다.
아양기찻길의 또 다른 매력은 270여m 길이의 다리 중간에 있는 카페 2곳과 전시실 '아양뷰갤러리'다. 아양뷰갤러리는 최근 동촌, 금호강, 동촌구름다리, 아양철교 등을 주제로 '동촌에서 아양기찻길까지' 전시회를 열었다. 예술가 및 주민들이 주변 경관을 표현한 그림과 사진 작품들을 전시했다.
◆민초들의 염원으로 지은 노곡동 징검다리
아양교 일대에서 좀 더 북서쪽에도 골목길 역할을 한 다리가 있었다.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일반적인 모습의 교량이 아니라 징검다리였기 때문이다. 한 번 더 상희구 시인을 불러보자. 그의 시 '노곡동 징검다리'에서 관련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의 북구 원대동 3공단쯤에서 금호강을 지나 북구 노곡동 및 조야동 쪽으로 이어지던 징검다리다.
상희구 시인은 "이 징검다리의 이름은 따로 전해지는 것이 없다. 편의상 이름을 붙였다"며 "흔히 징검다리는 실개천 같은 아주 작은 하천에 놓이는데, 어릴 적에 본 노곡동 징검다리는 금호강을 가로질러 규모가 대단했다. 갖가지 모양의 크고 작은 돌들이 깔려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만약 이 징검다리가 없었다면 노곡동과 조야동 사람들은 당시 시가지가 있었던 대구 성내로 가기 위해 서쪽 팔달교 쪽으로 2~3㎞를 우회해야 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당시 다리는 주민 편의보다는 정부의 물자 수송이나 군사적 목적 등을 위해 놓여졌다. 그래서 노곡동 징검다리는 수많은 민초들이 지혜와 힘을 모아 생활 속 골목길을 연장한 다리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띤다.
글 사진 황희진 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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