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히면 죽는다."
얼굴 좀 알리고 상승곡선을 그리다가도 한 번 삐끗하면 하염없이 추락한다. 연예계엔 유독 이런 일이 잦다. 그렇게도 잘나가던 클라라가 순식간에 미끄러져 복귀가 불투명해졌고, 데뷔 후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장동민도 과거 발언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때아닌 논란에 휩싸여 곤욕을 치렀다. 최근엔 의도적 군복무 기피 의혹과 함께 입국 금지를 당했던 1990년대 스타 유승준까지 국내 복귀 운운하며 인터넷 방송에 등장해 또 한 차례 푸짐한 욕을 먹었다. 가장 최근 미남 셰프 맹기용은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한 후 뚜렷한 이유도 없이 온갖 비난을 한몸에 받고 있다. 개인의 능력이나 관리방식도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온라인 영역이 넓어지면서 예상치 못했던 여론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키보드 하나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세상이 무섭다.
◆맹기용 논란의 이유는?
맹기용은 MBC '찾아라 맛있는 TV' 등 몇 개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 알려진 '훈남' 셰프다. 지난해부터 올해에 걸쳐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쿡방' '먹방' 열풍에 힘입어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큰 인기를 얻었다. TV에 모습을 보이고 있는 셰프들 중에서도 월등히 젊고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 그리고 홍익대 전자공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한 이력 등이 화제가 돼 주목도를 높였다. MBC '황금어장-라디오 스타' 등 인기 예능프로그램까지 섭렵하며 눈길을 끌던 '라이징 스타'다.
하지만, 연예인 못지않게 뜨거운 인기를 누릴 거라 예상했던 맹기용이 휘청거리는 계기가 생겼다. 스타 셰프를 대량 배출하고 있는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출연자들의 냉장고 속 재료를 이용해 15분간 셰프들이 요리대결을 펼쳐 승부를 내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에서 맹기용은 꽁치 통조림을 이용한 기상천외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맹모닝'이라고 이름 붙인 이 샌드위치는 꽁치통조림을 오렌지즙과 레몬식초 등을 이용해 요리하고 식빵 위에 올려 내놓은 음식. 그 나름 각종 재료를 써가며 복잡한 조리 과정을 거쳤지만, 누가 봐도 허둥지둥하다 실패한 게 확실했다. 그동안 다른 셰프들이 보여준 완성품과는 비주얼부터 큰 차이가 나 '자질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제껏 셰프로서 실력을 보여주기보다 방송에서 음식을 맛보고 평가하거나 훈훈한 외모로 화제가 됐던 터라 이 방송으로 인해 '과대포장된 스타'로 인식되며 네티즌들의 집중적인 질타를 받았다.
절치부심 끝에 이어진 '냉장고를 부탁해'의 요리대결에서 두 차례나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때마다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감싸주는 게 아니냐'는 의혹만 불러일으킬 뿐 맹기용의 이미지는 나아지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 22일 방송에서 보여준 요리는 한 블로거가 '내 레시피를 베낀 것'이라며 표절의혹을 제기해 또 한 번 문제가 됐다. 손동작 하나, 표정 하나에도 '딴지'가 걸리며 '국민 밉상'의 자리에 오른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맹기용이 '냉장고를 부탁해'의 첫 경합에서 어이없게 느껴질 만한 요리를 내놓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한 어린 셰프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큰 웃음을 자아냈다. 실추된 이미지 복구에 대한 문제는 개인의 몫이고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저 재미를 느꼈으면 그걸로 만족하면 될 터. 맹기용이 타 셰프들에 비해 못마땅한 실력을 보여줬다고 해도 '처음'이라 범할 수 있는 실수로 생각하고 향후 보여줄 활약에 기대를 걸어도 무방해 보인다. 특히나 이 프로그램이 셰프들의 요리 대결 자체에 집중하는 경연 프로그램이 아니라 복합적인 요소가 곁들여진 '예능'이란 점을 감안한다면 한층 더 너그러워질 수 있다. 그동안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한 셰프들이 '순발력'과 '경험'에 입각한 요리대결을 펼치되 '독창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진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맹기용에게만 적용되는 '표절 논란' 역시 가혹하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대중은, 또 '냉장고를 부탁해'의 팬층은 맹기용을 배척했다. '너 따위가 어디 감히'라는 심정으로 '당장 여기서 사라져라'를 외쳤다. 두 번째, 세 번째 대결에서 그럴싸한 음식을 만들고 재차 승기를 잡았지만 비난은 멈추지 않았다. 대중은 맹기용 음식의 단점을 낱낱이 찾아냈고 대결 과정의 문제점 역시 빠트리지 않고 날카롭게 잡아냈다. 그 지적들은 구체적이나 한편으로 '비난을 위한 비난'으로 보였다. 사실 맹기용이란 인물이 호감형이었다면 그저 넘어갈 수도 있는 것들. 이미 뭘 해도 예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운털'이 박힌 터라 회복이 쉽지 않았다.
◆질투유발자에 대한 의도적 배척
맹기용에 대한 대중의 집중적인 비난은 '질투유발자'에 대한 의도적인 배척으로 보인다. 좋은 집안에서 우수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 지금까지 유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 잘생기고 훤칠한 외모와 스펙으로 주목받고 4, 5년 차에 이미 본인의 레스토랑까지 소유한 셰프 맹기용은 두말이 필요없는 '질투유발자'임에 틀림없다. 10여 년씩 노력한 끝에 업계의 유명인으로, 그리고 방송까지 진출한 타 셰프들과 뚜렷하게 비교되는 것도 사실이다. 분명한 '질투유발자'다.
여기에 날로 불안정해지는 경제, 어수선한 정세도 한몫을 했다. 살아남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날로 커지고 있는 불안감과 내재된 대중의 분노가 하나의 대상에 집중된 셈이다. 맹기용에 대한 비정상적인 비난 여론의 내면엔 '나는 이렇게도 힘들게 살고 있는데 얘는 뭐니?'라는 정서가 분명히 깔려 있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요리로 실력을 과시했다면 그저 '질투유발자'로 부러움의 대상이 돼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을, 허둥지둥 실수를 하는 통에 대중으로 하여금 '별것 아닌 애가 타고난 복이 많아 잘살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대중은 화풀이 대상으로 한 번 '찍힌' 인물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용서'해줘 봤자 더 잘되는 꼴만 보게 될 것이고, 그러면 '타고난 놈이 잘된다' '없는 놈은 평생 고생한다'는 법칙이 성립되니 인정할 수 없을 터. 맹기용의 입장에선 '시간이 약이다'를 외치는 수밖에….
맹기용 투입으로 인한 반향을 노리다 이런 상황을 맞았으니 '냉장고를 부탁해' 제작진 역시 입장이 난감해졌다. 맹기용의 승리를 두고 '현장에서 제작진의 의도적인 연출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와 오도 가도 못하게 됐다. 어리바리한 신입의 성장기는 더 이상 보여줄 수 없게 됐다.
반면에 '냉장고를 부탁해'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심리와 충성도를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꺼내 든 히든카드가 자충수가 됐지만 사실상 리스크는 맹기용 본인이 안고 갈 뿐이다. 맹기용의 편에서 보면 안타깝지만 제작진의 입장에선 '카드'를 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바꿔 말하면, 맹기용 역시 일단 대중의 눈에서 사라지면 그걸로 이 상황을 종료시킬 수 있다. 조용히 자신의 원래 위치로 돌아가도, 그 삶이 꽤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살 것 같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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