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성이 불분명한 말은 꺼내지 않는 것만 못하다. 특히나 비방용 언사는 더욱 그렇다. 특정 대상이나 상황을 비판하고자 마음먹었다면 속 시원하게 내뱉는 게 맞다. 어차피 돌아올 역비판까지 감안한 결정이었을 테니. 그렇지 않다면 굳이 나서지 말고 조용히 지내거나 친한 지인들끼리 술 한잔 마시며 뒷담화나 즐기는 게 낫다. 어설프게 이도 저도 아닌 비판을 가했다가는 자칫 본인만 당하기 십상이다. 최근 스타셰프의 원조라 불리는 강레오가 '셰프테이너'(안방극장에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요리사)들이 넘쳐나는 현 방송계의 상황을 비판했다가 구설에 휘말렸다. 22년 차 스타 셰프로서 충분히 꺼낼 수 있는 말이었지만, 앞뒤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과한 표현을 해 문제가 됐다. 자충수를 둔 셈이다.
◆강레오, 최현석-백종원 등 간접 비판
발단은 강레오가 자신의 에세이집 발간에 맞춰 진행한 웹진 채널예스와의 인터뷰가 공개된 시점이다. 이 인터뷰에서 강레오는 "사람들이 셰프에 열광하는 게 그의 요리에 대한 철학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쇼의 형태가 좋아서인지 모르겠다. 대중이 요리에 대해 친근함을 느끼게 만드는 건 좋지만, 오히려 지금 TV에 출연 중인 셰프들의 식당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안 되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국내의 현 '셰프 열풍'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또한, "방송을 통해 단순히 유명해져서 연예인이 되고 싶은 거라면 나중에는 그런 현상이 이 시장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중 "한국에서 서양 음식을 공부하면 런던에서 한식을 배우는 거랑 똑같다. 본인들이 커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자꾸 옆으로 튀는 거다. 분자요리에 도전하기도 한다"는 발언과 "요리사가 재미만을 위해 방송에 나가면 '다 저렇게 소금 뿌리며 웃겨주는 사람'이 될 것" 등의 대답이 문제가 됐다. '분자요리'와 '소금' '한국에서 서양 음식을 전공한 이' 등의 표현이 최근 방송에서 주목도를 높이고 있는 최현석 셰프를 직접적으로 연상시켰던 것. "김치찌개 같은 평범한 요리를 왜 TV를 통해 넋 놓고 지켜봐야 하는지, 그런 모습을 볼 때는 좀 씁쓸하다"라는 발언도 요식업계 큰손 백종원을 겨냥한 게 아니냐는 말을 듣기에 충분했다.
인터뷰 공개 후 1차적으로 '최현석 저격' 논란이 불거지자, 강레오는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자청하며 해명에 들어갔다. 인터뷰에서 강레오는 "소금 뿌리기를 예로 든 건 지금 가장 유명하기 때문이지만, 특정 인물을 저격하려 한 건 아니다. 다만, 요리사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정확한 길을 제시하고 싶었을 뿐" 등의 말로 상황을 정리하려 했다. 하지만, 최현석의 트레이드 마크인 분자요리에 대해 다시 한 번 부정적인 의견을 던지는 등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확고히 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최현석 측 관계자들이 발끈했고, 강레오 측이 공식사과의 말을 전한 후에도 상황이 가라앉지 않아 직접 최현석 측을 찾아가 머리를 숙여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최현석 측에서는 "최현석 셰프가 후배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 같다며 서로 오해를 풀고 정리하자고 임원들을 설득했다"는 내용을 외부에 알리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최현석은 대인배로 떠올랐고, 강레오는 '쪼잔한 인물'이 돼 추락했다.
이후로도 온라인에는 '김치찌개' 등 백종원을 연상시킨 인터뷰 내용의 의미에 대한 네티즌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tvN '수요미식회' 등에 출연 중인 베테랑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도 '최현석의 허세는 귀여운데…. 진짜 허세가 따로 있었네. 평론을 하고 싶다 했는데 이제 한국 음식 배워서 언제 하겠는가. 배운 곳으로 돌아가면 빠를 것이다'라는 글을 SNS에 올리며 강레오의 행동을 질타했다. 이래저래 강레오만 코너에 몰리게 된 셈이다.
◆강레오의 지나친 '자부심' '자만심'으로 커져
본인의 뜻이 어떠했든 이 사건으로 인해 강레오의 '자부심'은 '자만심'으로 부각됐다. 실제로 두 차례의 인터뷰 내용은 강레오가 품고 있는 자만심의 부피를 느낄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해외 현지에서도 쉽게 가질 수 없는 경력을 가진 몇 안 되는 한국인 셰프라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이 강레오의 내면에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자부심이 자신감으로 발산됐다가 발을 헛디디며 자만심으로 표출됐을 터.
물론, 맨주먹 불끈 쥐고 겁도 없이 해외로 건너가 유명 셰프들의 식당에서 구박받으며 성장한 배경을 무시할 순 없다. 월급 한 푼 받지 못하고 "따라다니지 말라"고 하는데도 꾸역꾸역 런던 최고의 식당으로 걸어 들어가 허드렛일부터 시작한 인물이 강레오다. 그리고는 흔히 해외에서 성공한 한국인들이 으레 그랬듯이 '자는 시간까지 줄이며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프 고든 램지의 인정을 받았다. 고든 램지를 비롯해 피에르 가니에르, 라 탕 클레어 등 유력 정보지 미슐랭 가이드의 우수한 평가를 끌어낸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주요 스태프로 일했다니 그 말대로라면 경력 면에서 세계 어떤 요리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O'live 채널의 '마스터셰프코리아' 심사위원으로 발탁돼 방송활동까지 겸하며 유명인이 됐다. 앞서 스타셰프로 떠올랐던 에드워드 권이 경력 과대포장 논란에 휘말려 명예가 실추됐던 것에 비해 강레오는 이번 인터뷰 논란 전까진 사건사고 없이 '실력파 셰프', 그래서 독설까지도 가능한 인물이란 이미지를 가지고 승승장구했다. 여기에 번듯한 외모까지 갖추고 있으니 '스타셰프'로선 손색이 없다.
이 정도만 살펴봐도 강레오는 한국의 외식문화와 경쟁적으로 셰프라는 단어와 유사 직업을 가진 이들의 이미지를 소모하고 있는 방송계 현실을 비판하기에 적합한 자격을 갖춘 인물이다. 그래서 스타가 되고 싶어하는 요리사 지망생들을 걱정하고 셰프들을 본업보다 인기에 치중하게 만드는 방송계의 상업적 마인드에 한탄한 강레오의 지적은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한다.
하지만, 문제점을 꼬집되 자신의 우위를 스스로 인정하고 주변환경과 타인을 하수로 규정하는 실수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소금이나 뿌리는' 등의 발언으로 최현석을 거론한 건 본인 경력의 정통성과 가치를 인정하되 상대의 개성과 노력을 무시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 '김치찌개 같은 평범한 요리를 왜 넋을 잃고 지켜봐야 하는지'라는 말 속에는 김치찌개 등 서민적인 음식으로 요식업계에서 성공한 백종원이 '전문 요리사'로 불리며 자신과 비교되는 현실에 대한 냉소, 심지어 백종원을 스타로 떠받들어주고 있는 대중을 향한 비웃음까지 엿보인다.
요리사들의 방송 진출에 대한 비판 역시 아이러니하다. 강레오 본인이 예능에서 득을 본 대표적인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는 '예능'을 못해 '교양'에 가까운 프로그램에 출연한다고 항변했다. 맞는 말이긴 하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처럼 요리대결을 펼치고 웃음까지 유발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이미 스타셰프가 된' 강레오의 눈에는 어이없어 보였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점잖은 프로그램만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1박2일'이나 가족 전부를 이끌고 '오! 마이 베이비'에 출연한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만약 그 프로그램에서 스스로도 몰랐던 예능감이 터져 화제가 됐다면, 과연 강레오는 '품위'를 위해 예능에서 스스로 물러났을까. 변명을 위한 변명이고, 결국 자만심의 표출일 뿐이다. '스타셰프가 되고 싶다'고 달려드는 후배들을 향해서도 그저 '요리가 먼저냐 인기가 먼저냐'라며 독설을 날릴 게 아니라 먼저 그 길을 걸어본 선배로서 따뜻한 조언을 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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