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유라시아 친선특급

시베리아는 대개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우랄산맥 동쪽을 기점으로 태평양 연안까지를 일컫는다. 냉대, 한대가 대부분으로 때로는 영하 50℃ 아래까지 내려가 지리 시간에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로 외웠던 베르호얀스크와 오미야콘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워낙 춥다 보니 사람이 살기 어려운 끔찍한 곳의 대명사가 됐는데, 과거 러시아 제정시대나 소련 독재 정권 시절에 시베리아 유배형(刑)은 죽어야만 돌아올 수 있는 극형과 같았다.

시베리아라는 이름의 기원은 다양하다. 러시아 말로 북쪽이라는 뜻의 시에베르(Siever), 타타르나 몽골의 신(神) 이름인 수미르(Sumir), 순베르(Sunber)와 연관이 있다거나 몽골의 후예국인 시비르(Siber) 한국(汗國)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시베리아는 19세기 초 러시아 제국이 개발을 시작하면서 강제 이주를 통해 점차 세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1891년부터 1916년까지 건설한 시베리아 횡단철도다. 우랄 산맥 동쪽의 첼랴빈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9천288㎞로, KTX가 잠시도 쉬지 않고 최고 속도인 330㎞로 달려도 28시간 넘게 걸린다.

10여 년 전, 우연히 알게 된 헝가리 치과의사는 역시 의사였던 자신의 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여했다며 "한국이 낯설지 않다"고 했다. 이 인연으로 그의 아버지가 헝가리 수도인 부다페스트를 떠나 모스크바~시베리아 횡단철도~만주 국경~선양~단둥을 거쳐 평양에 도착하면서 쓴 일기장을 받게 됐다. 당시 북한군으로 참전했던 그의 아버지는 1952년 9월 10일부터 그해 12월 2일까지 일기를 남겼는데 엿새 동안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탄 여정을 이렇게 적었다. '아시아로 가면서 기차는 끝이 없을 것 같은 레일 위로 달렸다. 대부분 땅은 휴간지였고, 때때로 작은 숲이 보였다. 철길 가까이에 숲이 있었고, 기차는 그 긴 숲을 온종일 달렸다.'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첫 사업인 '유라시아 친선특급'이 19박 20일 일정으로 중국 베이징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각각 출발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모스크바, 폴란드 바르샤바, 독일 베를린에 이르는 1만2천㎞의 대장정이다. 꿈같은 길이지만, 아쉬운 것은 북한이다. 북한만 동의했다면 구태여 베이징이나 블라디보스토크를 첫 출발지로 삼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부산에서 경부'경의선을 타고 신의주를 거쳐 베를린까지 일사천리로 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정지화 논설실장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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