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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맹의 시와함께]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고은(19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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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다다른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이 세상의 길이 신성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달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빈부에 젖은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고 서서 참으면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꽉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무덤으로 받는 것을.

끝까지 참다참다

죽음은 이 세상의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文義)여 눈이 죽음을 덮고 나면 우리 모두 다 덮이겠느냐.

(부분. 『문의마을에 가서-고은전집 3』. 청하. 1988)

이 시집의 겉표지에 시인은 이러한 말을 새겨 놓았다. "시는 시인의 운명이 완성되는 것을 증오한다라고 두보(杜甫)는 말했다." 시를 쓸수록, 시에 몰두할수록 시인은 시를 닮아간다.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가 시인에게 그것을 쓰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의 운명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시 앞에 있는 수만 갈래의 운명으로부터 고통받는다. 이 시인은 처음 시에 접한 나의 젊은 시절을 나와 함께 동반했다. 밤마다 공동묘지에 홀로 올라 술에 취해 울부짖는 시인의 이미지는 이 시인의 것이다. 시대의 어두움과 죽음이 만나 이 시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살아있는 신화'가 된 이 시인이, 커 보이는 만큼 불편하다. 이 시는 그저 고등학교 국어 논술 해설을 위한 시가 되어 있다. 이 시인은 해마다 도무지 의미 없어 보이는 노벨문학상에 이름이 얹히고, 고은학회, 고은 문학연구소, 만인보 문학제, 만인보 조각 공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나는 우리 시인의 운명이 여기서 완성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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