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의 길은 좁다
조금만 벗어나도
무릎까지 푹푹 빠져든다
두 사람 마주치면
엉거주춤
서로 몸 비켜주어야 한다
저 하늘의 별들도 그렇게 한다지
별과 별이
별과 별의 중력에 끌려
미세하게 항로를 바꾸는 섭동(攝動) (……)
이만큼 걸어오기까지
그 어떤 별들이 나를 스쳐갔는지
한 틈도 내주지 않으려 했던
스스로가 미워진다
산 아래 흐르는 모든 길들이
구불텅구불텅
한사코 섭동의 흔적들이건만…
(부분. 『메롱메롱 은주』. 문학과 지성사. 2010)
이 시인을 소개하기 위해 접어둔 시는 다른 시였다. (「배후」 전문) 상황은 설명되지 않은 채 세 개의 장면이 켜졌다 꺼져 버린다. 불길함과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신들에게 바칠 생쌀 담은 그릇의 마지막 뚜껑마저도 불길하게 닫히지 않는다. 시인은 스스로의 말처럼 "말 이전의 말로, 침묵의 노래로, 또렷한 환청으로, 신의 음성으로, 부를 수 없는 노래로" 시를 그려나간다. 그럼에도, 그의 세계로 따라 들어가는 것은 묘한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우리는 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심지어 죽은 이들의 목소리와도 함께한다. 이 시에서 시인은 시에 설명한 "별과 별이 별과 별의 중력에 끌려 미세하게 항로를 바꾸는" 섭동 현상처럼 우리의 삶도 내 옆의 누군가의 중력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것도 내 옆의 누군가에 의한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산과 인간과 또 누군가의 인간들이 섭동하면서 산 아래의 울퉁불퉁한 길을 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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