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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우리에게 中日美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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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중국은…심지어 말이 서로 다르고 글자의 음이 같지 않기도 하니 깊이 생각해 보아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지금 만약 중국을 배워 풍속을 크게 바꾸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중국말을 할 줄 알아야 하니, 그렇게 하면 나머지는 모두 저절로 될 것이다…기자(箕子)가 다스릴 적에 만약 동방의 비속한 제도를 쓸어버리고 중화의 제도로 가르치고자 했다면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볼만하였을 것이다…."(이희경의 설수외사에서 발췌)

1446년 한글 창제와 반포에도 조선의 공식어는 한자였다. 지배층과 사대부는 한글을 외면했다. 배우기 쉽고 가장 과학적인 글자라는 찬사를 받는 한글이지만 조선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조선 후기 진보적 사고를 가진 북학파 학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암 박지원의 제자로서 친구인 박제가, 이덕무 등과 함께 소위 연암 그룹의 핵심 학자 설수 이희경(1745~1805)이 그랬다.

서얼 출신으로 불우한 삶을 살며 중국을 다섯 차례나 오가며 청나라의 문물 도입을 외쳤다. 저서 '설수외사'(雪岫外史)는 실학과 이용후생의 내용을 담아 박제가의 '북학의'와 쌍벽이란 평가를 받는다. 그는 "중국 사람들은 오랜 기간 성인(聖人)의 교화를 받아 성품이 모두 지극히 순수하고 아름답다. 사납기만 한 가축들도 모두 잘 길들여져 멋대로 날뛰며 복종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고 할 만큼 친중(親中)이었다. 한글에 아쉬움을 가질 만했다.

창제 당시 극심한 반대가 있었고 300년 세월이 흐르고 오랑캐 나라로 외면했던 청의 문물조차 수용하는 개방 분위기에서도 한글은 끝내 환영받지 못했다. 자연히 한글 전수는 서민과 부녀자 몫이었다. 설수가 "세종께서 언문을 만들었다…차츰 후대로 내려오면서 깨치기 쉽다는 이유로…언문만 앞다투어 전수하더니 결국 아낙네들이 편지를 주고받는데밖에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 것처럼.

이처럼 한글은 조선 때, 중국말에 밀렸다. 일제 지배 때는 일본말 강제로 한글이 자칫 사라질 뻔했다. 광복 이후는 미국 영어가 상전 대접이다. 유학도 중국, 일본, 미국파 득세로 바뀌었다. 특히 언제부턴가 방송 드라마는 영어 나라 미국 유학과 미국 파견(발령) 근무는 마치 어떤 문제 해결의 귀착지로 그렸다. 바로 그 푸대접 받는 한글 덕에 우리는 10월 9일 공휴일로 하루 쉰다. 중국어 일본어 영어 그리고 다음 상전은 무엇일까? 한글이 상전이 되는 날은 정녕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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