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족발'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를 생각해보자. 잊을 만 하면 들어오는 배달음식 전단지에 '족발+보쌈+막국수=3만5천원' 식의 광고, 소주에 어울릴 것 같아 한 세트 시켜보면 살코기는 얼마 없고 아래쪽 뼈만 빨아먹었던 기억, 그 때문에 '족발은 가격 대비 만족도가 떨어져'라고 단정 지었던 선입견. 머릿속에는 몇십 년 된 서울 장충동의 족발 할머니가 만든 깊은맛을 떠올리지만 막상 그런 상상을 충족시키는 족발 맛집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배달음식 전단지를 굳이 돌리지 않아도 '동네의 소문난 맛집' 칭호를 얻은 곳이 있었다. 서문시장 인근 59살 동갑내기 친구 3명이 소개한 '서울왕족발'은 부담스럽지 않게 매일 모여서 소주 한 잔에 삶의 희로애락을 푸는 아저씨들만의 아지트다.
◆족발 한 점, 소주 한잔에 이야기를 싣고
대구 서구청에서 환경미화원 일을 하는 황인선 씨와 서문시장에서 내의류를 제작'판매하는 배진칠 씨, 그리고 서문시장에서 사교댄스 관련 의류를 만들어 파는 김영대 씨는 알고 지낸 지 20년 정도 된 동네 친구들이다. 이 세 사람은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어떤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서울 왕족발을 찾는다. 오늘은 어떤 명목으로 모였는지 물어보니 김 씨의 부인이 병원에서 퇴원하는 기념으로 족발에 소주 한잔 하는 거란다.
늘 만나는 친구들이라지만 매일 만나도 지겹지 않다. 주로 만나서 하는 이야기는 집안 이야기, 사업 이야기, 서로의 건강과 안부 등인데 제일 많이 하는 이야기는 만나서 등산'낚시 하러 갈 계획 짜기다. 슬슬 단풍도 들고 손맛을 느낄 만한 시기가 되는지 처음에는 서로 안부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이야기가 등산, 낚시 이야기로 빠졌다. 재미있는 건 이야기 와중에도 젓가락은 족발 접시를 계속 향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김 씨는 "다른 곳의 족발은 살코기가 퍼석거려서 먹기가 힘든데 서울왕족발은 일단 쫄깃하고 술을 먹어도 속을 안 쓰리게 하는 족발"이라고 말했다. 술을 먹어도 속을 안 쓰리게 한다면 도대체 술을 얼마나 드시는 걸까. 주량을 조심스레 물어보니 "한 사람당 소주 두 병은 일단 기본"이라 한다. 역시 족발은 주당을 만족시키는 훌륭한 안주였다.
◆동네 터줏대감이 만드는 족발
서울왕족발 식당 내부는 '노포'의 느낌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알루미늄 여닫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 보이는 페인트와 붓으로만 쓴 메뉴판은 '정말 이 가게가 오래된 가게 맞구나' 하는 사실을 짐작하게 만든다. 서울왕족발의 사장 이승수(71) 씨는 "1990년 10월에 문을 열었으니 정확히 올해 25년째"라고 했다. 이 사장 또한 서문시장 근처인 비산동에서 50년 이상 산 터줏대감이다. 그래서 안에서 먹고 가는 사람보다 포장이나 배달을 해서 가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서문시장 상인들이 주요 단골인데, 서문시장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 퀵서비스 배달비용을 부담해 가면서까지 배달주문을 한단다. 이승수 사장의 아들 이창환(29) 씨는 "아마 제일 멀리 가 본 배달이 성서 지역까지였던 걸로 기억한다"고 했다. 오랫동안 장사를 하다 보니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다. 창환 씨는 "가게 위 집, 누나 방에 침대를 들이려는데 현관문이 좁아 창문을 통해 넣으려는데 인부만으로 해결이 안 되자 당시 족발에 소주 한잔 하러 오신 손님들이 기꺼이 힘을 보태주셨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25년 동안 사랑받는 족발의 비결을 창환 씨에게 몰래 물어봤다. 창환 씨는 "부모님 가게를 물려받으려고 일을 배우면서 비결을 찾아봤는데 정말 별다른 게 없었다"며 "단지 좋은 돼지 족발 고기를 골라야 하고, 족발을 삶을 때 불 조절을 잘해야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식감의 족발을 만들 수 있다는 것만 안다"고 말했다. 이승수 사장과 가족 모두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었다. "다른 비결이 있다기보다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만들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어찌 보면 이 말이 25년 동안 다른 메뉴 하나 없이 족발 하나만으로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이지 않을까.
▶족발=소 2만5천원, 중 3만원, 대 3만5천원, 특대 4만원
▷영업시간=오전 10시~오후 11시(족발이 소진될 경우 일찍 문 닫음)
▷규모=16석. 주차는 인근 서문주차장 이용가능
▷서문시장 인근 비산동, 대신동 등은 배달 가능. 이외 지역은 배달 시 별도 문의 필요.
▷주소 및 문의=대구광역시 서구 달성공원로5길 25(비산동 151-26), 053)554-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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