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논란이 한창이다. 정부가 후진국이나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국정교과서'를 만들기로 했다는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정교과서를 굳이 하겠다는 이유를 들어보니 더 가관이다. 기존의 교과서들이 친북 좌편향이라서 그렇단다. 그러면서 여당은 온 나라에 "우리 아이들이 왜 주체사상을 배워야 합니까?"라는 플래카드를 시뻘겋게 써 붙였다.
이것이 코미디인 이유는 얼마 전 바로 이 정부의 교육부가 지침으로 "주체사상과 3대 세습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라"고 내려 보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더 웃긴 것은 이 문제 있다는 교과서들을 검정한 교육부가 바로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교육부라는데 있다. 백 번 양보해서 지금의 교과서가 무슨 '종북좌빨(?)' 교과서라면, 검정시켜준 교육부 관계자들부터 징계를 내려야 할 일이 아니겠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대한민국에 정말 북한을 찬양하고 자유민주주의를 폄훼하는 이상한 교과서가 나돌고 있다면 이미 난리가 나도 한참 났어야 정상일 것이다. 애초에 교육부의 교과서 검정과정 자체가 그리 허술하지도 않을뿐더러, 전국에 그 수많은 교사, 학부모, 학생들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존 밀턴의 그 유명한 말을 떠올려보라. "어느 누가 진실과 거짓이 싸우는 시장에서 진실이 패배한다고 본단 말인가." 수많은 눈에 의해 여러 교과서가 판별되는 자유 경쟁에서 거짓 교과서가 설 자리 따위는 없는 것이다. 문제는 하필 그런 몰상식한 교과서를 만들었다가 전국적으로 왕따를 당했던 세력들이 이제는 '국정교과서'라는 구시대적 발상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는 점이다.
제대로 된 우익교과서나 반공교과서가 없어서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자기들끼리 모여서 우익교과서도 만들고, 반공교과서도 만들면 된다. 그런 교과서도 완성도가 높다면 적절한 비율로 채택될 것이며 그 나름대로 우리 사회에 훌륭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일제가 축복이고, 친일파가 진짜 애국자라 주장하는 '친일교과서'도 만들 수 있게 둬야 한다. 그게 옳아서가 아니라 그게 옳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자유민주주의가 가지는 최대의 장점이 아니던가? 물론 그런 식의 역사관을 담은 교과서가 전국에 과연 몇 개교에서나 채택될지는 모르겠다만.
그러나 결국 결론은 국정교과서로 가는 분위기다. 울적한 가운데 국정교과서를 찬성하시는 분들에게 혹시나 나중에 정권이 바뀌면 어쩔 건가 물어보고 싶다. 그때는 소위 '종북좌빨' 세력들이 만든 국정교과서 한 권만으로 우리 아이들이 역사를 배우게 될 것 아닌가. 그러나 미리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정권이 혹 바뀐다면 '종북좌빨' 국정교과서가 나오는 대신에 여러 종의 검인정교과서 체제로 돌아갈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놈들도 똑같은 놈들이데이!'라는 어르신들에 말에 일정하게 동의한다. 그래도 '그놈'들은 최소한 민주주의의 글로벌 스탠더드 정도는 숙지하고 산다.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는 세력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을 가장 쉽게 망각해 버리곤 한다는 점이 결국 이 비극을 쓰고야 말았다. 반공, 반공하면서 좌파들이나 좋아할 법한 '국정'을 좋아하고, 자유, 자유하면서 대체재를 분서(焚書)하고 반대 목소리를 묻어버린다. 이승만을 국부로 칭송하는 교과서를 만들려고 벼르는 사람들이, 외려 이승만의 업적인 '미국식 민주주의 제도' 따위는 오늘날 깡그리 무시하는 행보를 보이는 것이다. 1980년대 김일성 좋다고 난리를 치던 주사파들이 전향해 그 세력의 앞잡이가 되셨으니 원래 이상할 일도 아닌 것이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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