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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여고시절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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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세탁소집 셋째 딸의 어린 시절 고백이다. 용돈을 아껴 친구들에게 맛난 걸 사주니 친구들이 자기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느낀 그녀는 세탁소 돈 통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엄마 몰래 지폐를 세어보고 홀수인 날은 한 장씩 훔쳐 친구들과 맛있는 군것질도 하고 예쁜 것도 사서 나누어 가지며 즐겼다. 엄마는 당연히 모를 거라 여기고 있었기에 한 치의 죄책감 없이 즐겁게 도둑질을 즐기던 어느 날 엄마가 그녀를 불렀다.

"수진아, 얼마 전부터 세탁소에 도둑년이 돈을 조금씩 훔쳐간다. 그래서 엄마가 내일 그 도둑년을 잡으려고 미꾸라지를 사 올 테니 구경해 보렴" 하시는 것이다. 그녀는 "미꾸라지로 도둑년을 잡는다고요? 어떻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바늘에 실을 꿰어 미꾸라지 눈을 통과시키면 도둑년이 미꾸라지가 느끼는 통증을 똑같이 느껴서 눈을 감고 몸을 비틀며 쓰러지거든. 그 순간 잡아서 경찰한테 넘기려고"라고 대답을 하시는 것이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그날 밤 그녀는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결국 다음 날 아침 학교도 못 가고 엄마에게 눈물의 고백을 했다. "엄마 사실은 그 도둑년이 저예요. 친구들이 좋아해서 멈출 수가 없었어요.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을게요."

얼마 전 스피치 수업에서 자기고백 시간에 한 회원이 들려준 이야기다. 참으로 지혜로우신 어머님 덕분에 그녀는 바르게 성장하여 잘 살아가고 있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나의 여고시절 나름 정의를 실현한다고 저지른 일이 떠올랐다.

편모슬하에서 네 명의 오빠와 한 명의 여동생을 둔 나는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활기차게 여고시절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화통한 성격 탓에 따르는 친구들이 많았던 덕분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나의 판단과 행동에 믿음을 가지고 정의를 가장한 나쁜 행동을 저지른 적이 있다. 내 곁에는 너무나 가난해 체육복조차 살 수 없는 친구 A가 있었는가 하면, 집안이 부유해 매일 아침 아버지의 검은색 세단을 타고 등교하는 친구 B가 있었다. 어느 날 난 강꺽정이 되기로 결심했다. 부자 친구의 사물함에서 체육복을 훔쳐 A에게 전해줬다. "어디서 거저 생겼으니 네가 가지면 된다"고 했다. A는 뭔가 찝찝한 듯 나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고마워하였고, 그 모습에 뭔가 뿌듯함을 느낀 나는 B의 참고서도 몰래 훔쳐 A의 이름까지 써서 전해 주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객기를 부린 것인가 싶어 얼굴이 화끈거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약한 친구를 위한다는 그 마음을 내버려두지 않고 무언가를 실행한 그때 그 시절의 순수함이 그립기도 하다. 나의 도둑질을 꿈에도 예상하지 못하고 나를 믿어줬던 B에게 이 지면을 빌려 사과의 말을 전한다. 이 가을 순수의 시대를 함께한 그녀들이 무척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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