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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소통은 없고 교시<敎示>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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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와 여야를 향한 박근혜 대통령의 작심 발언 수위가 무섭다. 국무회의 석상이나 정부의 주요 행사에서 국회와 의원들을 향해 내뱉는 박 대통령의 발언은 말썽쟁이 아이들을 꾸짖듯 호통 수준이다. 박 대통령은 최근 총선을 겨냥해 직무를 유기하는 국회를 향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말 폭탄을 투하했다. 마치 국민을 향해 여야 전체의 판을 갈아엎어야겠다는 듯 국회와 여야 의원들을 심하게 나무랐다.

박 대통령에 따르면 국회의원들은 '기득권 집단'이요 '사람의 도리'도 않는 집단이다. 또 국회는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곳' '립서비스만 하는 패거리'다. 모두 맞는 말이다. 국민의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

지난 6월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겨눈 '배신의 정치' 발언 때만 해도 그저 특정 개인에 대한 불만의 표출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 후에도 박 대통령의 발언은 멈추지 않았다. 무기력한 여당은 물론 야당에게로 전선이 확대됐다. 최근의 박 대통령 워딩(Wording)은 더 세고, 더 구체적이다.

급기야 박 대통령과 국회의장이 정면충돌했다. 청와대가 15일 정무수석을 국회의장에게 보내 경제 및 노동개혁 관련 법안의 직권상정을 요구하자 정의화 의장은 16일 "원천적으로 안 되는 것을 불법으로 하란 말이냐"며 작심한 듯 청와대를 비판했다. 정 의장은 이어 오히려 청와대에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박 대통령이 국회선진화법 통과를 주도한 것을 겨냥이라도 하듯 정 의장은 "선진화법을 강력하게 반대한 사람이 바로 나다"며 안타까워했다.

물론 박 대통령과 정부는 한국 경제가 성장 모멘텀을 잃고, 고용절벽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데 대해 국가를 운영하는 책임자의 입장에서 관련 법안 통과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것은 국민들도 다 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중복 투자 업종의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한 일명 원샷법, 노동 개혁 5법 등은 하나같이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꿀 만한 시급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 맞는 말이다. 이번에 통과되지 않으면 곧바로 선거 국면으로 접어들어 제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박 대통령이 줄곧 예상치 못한 강한 표현을 써 가면서 국회를 압박한 것도 이런 절박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박 대통령의 언행에 선뜻 동의하기가 힘들다. 박 대통령이 야당 시절 만든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직권상정이 안 된다는 것은 누구보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제 자식이 아무리 못났더라도 아이들 욕을 하면 부모는 화가 난다. 박 대통령이 여야, 국회 전체를 심판해야 한다고 망신을 줘놓고선 정부가 요구한 법에 대해 직권상정을 안 해준다고 압박하니 국회의장으로서도 불만이 쌓일 만하다.

이는 야권은 차치하더라도 청와대가 새누리당 출신인 국회의장과도 소통이 안 된 결과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여당에 대해서도 설득과 협조를 요구하기보다는 '배신의 정치'를 한다고 윽박지르고, 권위주의 정권 시절처럼 교시(敎示)를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야당에 대한 접근은 어땠나. 박근혜정부가 1년 6개월 전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 통과시킨 외국인투자촉진법의 결과가 어땠나. 정부는 수십억달러의 투자 유치로 2만~3만 명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홍보하며 법안 통과에 매달렸다. 아직 결과를 논하기에는 때 이르지만 현재까지 일자리 창출은 수백 명에 그쳤고, 투자 유치도 당초 목표치의 10%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야당의 분석이다. 정부가 통과를 요구하는 법안 중에는 허점도 많다. 야당으로선 수정을 요구할 만한 것들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예민한 법안 통과를 앞두고 야당과 소통을 더 많이 했다. 대통령은 필요할 때만 여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부를 것이 아니라 야당에 쳐들어가서 읍소하고, 부탁하라. 그러면 야당은 국민이 보고 있는데 배길 재간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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