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 정통 멜로 주인공'제작자로 등판
#기억 잃은 남자와 한 여자 미스터리 게임
#메시지 좋지만 어정쩡한 마무리 아쉬워
한국영화가 본격적인 대중적 출발을 알린 1926년 나운규의 '아리랑'에서 르네상스기인 1960년대까지, 그리고 신르네상스기인 1990년대에도 멜로드라마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장르였다. 여배우 트로이카(1960년대 문희, 윤정희, 남정임/ 1970년대 장미희, 유지인, 정윤희)와 일본에서 시작된 한류붐을 타고 아시아의 스타 위치에 오른 배우들은 거의 모두 멜로드라마를 통해서 짙은 인상은 남겼다.
주인공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요소는 개인적인 문제일 때도 있지만 계급이나 차별 등의 사회적인 요소가 문젯거리가 되곤 하기 때문에, 멜로드라마는 때로는 사회제도를 겨냥하는 전복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자유부인'(1956)은 여성의 사회생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가정 내 갈등을 얘기하고, 신성일과 엄앵란 주연의 '맨발의 청춘'(1964)은 서로 다른 계급의 남녀 간 결합이 불가능한 사회를 겨냥한다. 장미희 주연의 '겨울여자'(1977)는 여성의 성을 억압하는 한국사회의 보수적 윤리의식에 도전하며, '깊고 푸른 밤'(1985)은 한국에 미국이란 무슨 의미인지를 함의적으로 캐물으며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과 로맨스를 엮는다.
이렇게 멜로드라마는 선남선녀의 사랑과 오해, 헤어짐과 재결합이나 파국 이상의 넓고 깊은 문제를 제시할 수 있는 틀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멜로는 장사가 잘 안 되는 장르가 되어버렸다. 2000년대 이후 액션, 스릴러, 사극이 한국영화 흥행을 주도하는 장르가 되었고, 멜로드라마는 TV에서 '막장 드라마'라는 기이한 이름을 얻었다. 이로 인해 멜로드라마는 점점 더 나이대가 있는 주부나 보는, 때로는 시시한 장르라는 느낌을 줄 정도로 주가가 추락해버렸다. 하지만 멜로드라마는 한국영화의 탄생에서 지금까지 중요한 고비마다 새로운 시각과 실험으로 한국영화의 성장을 견인한 장르이며, 여전히 많은 관객들은 이 장르를 사랑한다.
'연애의 온도'(2013)같이 잘 만든 멜로에 관객들은 호의적으로 반응했고, 최근 할리우드 멜로의 진품이라 여겨지는 '이터널 선샤인'(2004)의 재개봉은 놀라운 흥행 수치를 낳았다. 새롭게 재개봉하는 일본영화 '러브레터'(1995)나, 또 한 번 흥행하고 있는 영국영화 '러브 액츄얼리'(2003), 스웨덴의 뱀파이어 로맨스 '렛미인'(2008) 등은 사랑의 본질과 인연에 대한 성찰을 치열하게 담은 멜로의 수작이다.
정우성이 오랜만에 정통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제작자로서도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정우성과 김하늘 주연, 신예 여성감독 이윤정의 '나를 잊지 말아요'다. 영화는 교통사고 후 10년간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깨어난 남자와 그 앞에 나타난 비밀스러운 여자의 새로운 사랑을 그린 감성 멜로다.
석원(정우성)은 교통사고 후, 지난 10년의 기억이 지워져 버렸다. 친구, 가족, 심지어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조차 흐릿해진 그는 병원에서 우연히 자신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낯선 여자 진영(김하늘)을 만난다. 석원은 진영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그녀와 함께하며 새로운 행복을 느끼며 새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행복함도 잠시, 석원에게 조금씩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지금의 행복이 깨어질까 두려운 진영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두 사람에게는 비밀이 있다. 영화는 그들이 만나고 맺어지는 과정을 시간 순으로 보여주지만, 10년이란 세월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두 사람의 인연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미스터리 기법으로 조금씩 관객에게 던진다. 석원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이야기는 바통을 이어받아 진영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로 바뀐다. 석원의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진영의 기억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관객은 이야기의 모자이크를 맞추어가는 게임에 동참한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잊어버린 두 사람의 과거는 우리 모두가 경험했던 상처를 건드린다. 많은 아이들이 죽었고,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며, 많은 이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을 힘겨워한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도 살아갈 용기를 주는 것은 사랑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두려운 세상이다.
영화는 좋은 아이디어와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미스터리 기법을 끌고 가는 힘 있는 연출력이 뒷받침되지 못해 어정쩡하게 마무리되고 만다. 아름답게만 보이려고 하는 남녀배우들의 연기는 생활의 치열함을 품지 못한다. 멜로드라마라는 장르적 틀을 훌륭하게 활용할 또 다른 멜로를 다시 기다려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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