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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나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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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나의 투쟁'은 히틀러가 구술(口述)하고 최측근 루돌프 헤스가 받아 적은 것으로, 1945년까지 1천200만 부나 판매된 '대박'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다. 초고가 산만하기 짝이 없는 악문(惡文)에다 내용도 허황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치당 창당의 주요 인물인 오토 슈트라서가 "진부함과 초등학생 같은 유치한 추억, 주관에 치우친 판단, 사사로운 증오심의 잡탕"이라고 혹평할 정도였다.

그러니 출판을 거절당한 것은 당연했다. 히틀러가 '나의 투쟁'을 구술할 당시 최측근 중 하나로 하버드대를 나온 미국인이며 나중에 히틀러의 해외 담당공보관에 오른 한프 슈탱글이란 인물이 있었다. 그는 출판업자인 형에게 '나의 투쟁' 출간을 부탁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그래서 허황한 기사로 악명 높았던 나치당 기관지 '민족의 감시자'에서 음악 비평가로 활동했던 슈톨칭-체르니를 중심으로 루돌프 헤스, 한프 슈탱글 등이 달라붙어 원고를 새로 쓰다시피 했다. 이렇게 해서 책은 나왔지만, 히틀러도 자기 책이 '민족의 감시자'의 황당한 기사와 다를 바 없다고 시인했다. 히틀러는 1933년 총리가 된 뒤 "총리가 될 줄 알았다면 그런 책은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저자 스스로 악문임을 인정한 책이 잘 팔릴리 없었다. 1925년에 나온 1권은 1929년까지 2만3천 권, 1926년에 나온 2권은 1만3천 권이 팔리는데 그쳤다. 하지만 나치당이 총선에서 약진하면서 급격히 늘어나 1932년까지 8만 권이나 나갔다. 나치당이 집권한 1933년부터는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 그해에만 150만 권이 팔렸다. 1936년에는 점자판이 나온 것은 물론 1, 2권을 합본해 신혼부부에게 선물로도 줬다. 외국에서도 16개국어로 번역돼 수백만 권이 팔려나갔다. 이에 따른 수입은 막대했다. 히틀러가 벌어들인 인세수입은 1933년에만 교사 연봉(4천800마르크)의 250배인 120만마르크였다.

'나의 투쟁'이 다시 대박을 터뜨렸다. 독일 현대사회연구소가 히틀러의 사상을 반박하는 주석 3천500개를 달아 발간한 '나의 투쟁' 초판은 선주문 1천500권이 들어오는 등 4천 권 모두 매진됐다고 한다. 이를 두고 일부 유대인 단체는 우려를 표시하지만 새로 발간된 '나의 투쟁'에는 히틀러의 사상을 반박하는 주석 3천500개가 달렸음을 감안할 때 '나치 사상의 부활' 같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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