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통감 하세가와 요시미치에 이어 1906년 3월 2일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조선통감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외교에서부터 사소한 내정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간섭하며 조선 병탄의 수순을 밟았다.
1907년 7월 19일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고, 7월 24일 한일신협약으로 '차관정치'의 기틀을 만들었다. 곧바로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했다(1907년 7월 30일). 그는 3년 6개월 동안 조선 합병에 필요한 모든 정지작업을 마치고, 1909년 일본의 추밀원 의장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그해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에 의해 사살되면서 한일합병을 보지 못하고 저승길로 떠났다.
이토는 우리 민족에게 '공적 1호'이지만, 일본인에게는 근대 일본의 기틀을 다진 최고의 정치가로 꼽힌다. 1888년 헌법 초안을 심의하기 위해 설치된 추밀원 의장을 맡았고, 총리를 네 번이나 지냈다. 일본의 2002년 2월호는 그를 역대 최고의 총리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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