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경주의 시와함께] 붉은 꽃

장옥관(1955~ )

거짓말할 때 코를 문지르는 사람이 있다 난생처음 키스를 하고 난 뒤 딸꾹질하는 여학생도 있다

비언어적 누설이다

겹겹 밀봉해도 새어나오는 김치 냄새처럼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것, 몸이 흘리는 말이다

누이가 쑤셔박은 농짝 뒤 어둠, 이사할 때 끌려나온 무명천에 핀 검붉은 꽃

중략

핏빛 노을 밭에서 흔들리는

수크령

대지가 흘리는 비언어적 누설이다

누설은 비밀이 새어나간다는 말이다. 시인의 무구한 호기심은 삶 속의 숨겨진 비밀에 늘 간섭을 하고 싶다. 시인의 언어들은 비밀 곁에 늘 어른거린다. 세상엔 계급이 존재해도 시의 세계에서 비밀은 위계가 없다. 모든 비밀의 자질엔 시가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짐승이 땅을 헤집고 뒤지듯, 숨겨진 세계의 상실을 시인은 언어를 넘어서는 언어로 돕고 싶었을 것이다. 어느 삶의 구석진 곳에 남겨진 한 비애의 독창성이 시가 되기도 하지만, 그보단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자신의 삶에서 어떻게 외로움이 되어 가는지를 경험했거나, 낙원을 결코 믿지 않았지만 마음대로 실수할 수 있는 자유는 늘 꿈꾸던 전사의 용기가 그를 북돋았을 것이다. 하루를 가만히 열어주던 수줍은 언어들로 세계에 다가서고 싶었을 것이다. 발전이라는 단어보다는 발열이 가득한 단어들과 눈길보다는 손길이 먼저 가던 사소하고 작은 세계에 대해, 이처럼 자신의 문제를 비밀스럽게 밀어 넣고 싶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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