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동주' 이준익 감독 영화 부문 대상
이번 백상예술대상은 이준익 감독에게 대상을 안겨주면서 지난 한 해 동안의 행보를 치하했다. 이준익 감독은 '사도'와 '동주' 등 기획 자체부터 쉽지 않을 듯한 영화를 만들어내고 그 완성도에 대한 호평을 들으며 충무로 큰 형님으로서 귀감이 된 인물이다. 특히 충무로 상업자본으로 만들어낸 '사도'를 내놓은 후, 얼마 되지 않아 윤동주를 소재로 한 흑백 저예산 영화 '동주'를 발표하는 등 연간 두 편의 연출작을 내놓으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올해 57세의 나이로 상업영화뿐 아니라 저예산 영화까지 찍으며 창작열을 불태우는 이는, 적어도 충무로에선 이준익 감독이 유일하다.
이준익 감독은 앞서 '소원'을 연출했을 때도 영화의 소재가 된 실제 사건 피해자들의 입장과 마음을 고려해 홍보를 최소화하고 함께 영화 작업에 참여한 이들의 진실성을 알리는 데 애썼다. 적어도 '돈벌이'를 위해 아동 성폭행이란 소재를 차용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가리고 가리며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왕의 남자'가 극장가에서 승승장구할 때도 스크린을 확장하려는 배급사를 오히려 말리며 신작들에 기회를 내줬다. 배급사의 작위적인 스크린 점령 없이도 관객 수 1천만 명을 넘어선 영화라 지금도 충무로에서 '진정한 천만 영화'라 불린다.
'소원'이 청룡영화상 작품상을 받긴 했지만 이준익 감독 본인이 이 작품이나 후속작으로 연출상을 받진 못했다. 이번 백상예술대상 대상 수상은 연출력과 기획력에 대한 칭찬뿐 아니라 모범적인 선배로서 충무로를 지키고 있는 노장에 대한 존경의 뜻을 담은 듯해 보기 좋았다.
◆'태양의 후예' 대상 수상은 적합한가
반면, TV 부문 대상 선정에 대해서는 잠시 고개가 갸웃거렸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최근 보기 드물게 놀라운 상업적 성과와 화제성으로 주목받긴 했지만, '막장극' 수준의 내러티브로 논란이 됐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TV 부문에, 특히 드라마 중 '응답하라 1988'이나 '시그널' 등 화제작이 많아 '태양의 후예'에 상을 돌리는 자체가 시상식 주최 측에서도 부담됐을 법하다. 결국 백상예술대상 측은 극본상을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에게 주고, 연출상은 '응답하라 1988'의 신원호 PD에게 넘겼다. 작품상 역시 '시그널'에 돌아갔다. 송혜교와 송중기 등 주연배우들은 인기상과 아이치이 스타상을 받았지만 최우수연기상 수상에는 실패했다. 결과적으로 각 부문별로 공을 치하할 만한 이들에게 상을 주고 '태양의 후예'에 대해서는 작품 자체가 남긴 꽤 대단했던 화제성과 상업적 의의만 높이 산 셈이다.
대상이란 의미 안에 작품의 완성도라든가 배우들의 열연 등 여러 요소들이 포함되는 게 당연하지만 '태양의 후예'는 어느 정도 예외로 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 드라마 시장에 사전 제작 붐을 몰고 오고 해외 진출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는 등 상업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해냈으니 외면할 순 없었을 터. 그렇다고 작품성을 논하기엔 허점이 넘쳐난다.
시상식 이후 '태양의 후예' 극성팬들이 SNS와 관련 기사 댓글창 및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송혜교와 송중기의 최우수연기상을 포함해 극본이나 연출상 등 부문별 수상 실패에 대한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지나친 욕심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상업적 가치를 높이 살 순 있겠지만, '태양의 후예'가 연출상과 각본상을 가져갈 자격은 없다.
◆최우수상 수상 이병헌-전도연, 존재감 평가
이병헌에게 있어 올해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 수상은 남다른 의미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백상예술대상에서 수차례 최우수연기상을 받고 심지어 대상까지 받았던 배우다. 하지만 2년여 전 불거진 스캔들 이후 사실상 나락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할리우드와 충무로를 오가며 연기로 정면돌파를 노린 후 영화 '내부자들'로 '연기 하나는 잘하는 배우'라는 사실을 새삼 입증했는데, 이번 백상예술대상에서 상까지 받으면서 자신의 입지를 다시 한 번 공고히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병헌 자신도 이번 수상에 대한 열망이 어느 때보다 컸을 거란 짐작이 가능하다.
전도연의 수상도 의미 있다. 2011년 '카운트다운'을 시작으로 '집으로 가는 길' '무뢰한' '협녀: 칼의 기억' '남과 여' 등 출연하는 작품마다 줄줄이 흥행에 실패했다. 연기력에 대한 평가야 변함이 없지만 지속적인 실패로 그 명성에 조금씩 금이 가면서 위기론까지 불거진 상태였다. 이 시기에 필요한 건 '전도연의 능력'에 대한 공식적인 인증 절차다. 이번에 백상예술대상이 그 역할을 해줬다.
◆tvN 드라마 압도적 우세
TV 부문에서는 tvN 드라마가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응답하라 1988' '시그널' '치즈 인 더 트랩' 등 세 편의 히트작이 연출-극본-연기 부문에 고루 수상 후보를 배출했다. 덕분에 TV 부문 수상 후보들도 대거 tvN 드라마 출연자들로 구성돼 시선을 모았다. 신인상 부문 수상 후보로 '응답하라 1988'의 류준열-이동희-혜리-류혜영, '치즈 인 더 트랩'의 김고은이 참석했다. 남녀 최우수연기상 후보에도 '시그널'의 조진웅과 김혜수가 거론돼 시상식에 모습을 보였다. 고경표와 박보검이 '차이나타운'으로 영화 부문 신인상 후보에 올랐지만 사실상 '응답하라 1988'의 여파로 인해 역시 'tvN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감독과 작가까지 포함하면 TV 부문에 참석한 수상 후보 중 3분의 1 이상이 tvN 드라마 관계자들이었다.
결과도 만족스러웠다. '응답하라 1988'이 연출상뿐 아니라 류준열에게 신인상을 선물했고, '시그널'은 작품상과 극본상에 이어 김혜수에게 최우수연기상까지 안겨줬다. '치즈 인 더 트랩' 역시 이 드라마로 첫 안방극장 신고식을 마친 김고은의 손에 신인상을 쥐여줬다.
백상예술대상 TV 부문에 비지상파 콘텐츠가 이만큼 독보적으로 부각된 건 처음이다. 매년 수적으로 지상파 콘텐츠가 많을 수밖에 없었고 화제성 면에서도 단연 앞섰다. 지난해 tvN 예능의 상승세와 함께 나영석 PD에게 대상이 돌아가면서 지상파의 위기가 가시화되는 듯했다. 이어 드라마까지 tvN이 휩쓸면서 업계 판도 변화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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