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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민의 에세이 산책] 허튼 이야기는 진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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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가 정말 수영을 잘하는 줄로만 알았다. 아이 말이 그랬다. 킥판 없이도, 구명조끼 없이도 한 바퀴를 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몇 번을 물었다. "정말?" 아이는 어김없었다. 수영장을 한 바퀴 돌 수 있다고 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유치원 수영교실을 몇 개월 다녔으니까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수영장에 함께 갔던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아이는 수영을 전혀 못했다. 물속을 걸어다니는 수준이었다.

나는 아이의 친구가 정말 영어를 잘하는 줄로만 알았다. 레오는 영어로 일기도 쓸 줄 안다기에 몇 번을 물었다. "정말?" 심지어 유치원에 미국인 선생님이 오면 자기가 하지 못하는 말을 모두 대신해준다고 했다. 정말 영리한 아이인가 보다 했다. 며칠 전 유치원 수업 참관을 가기 전까지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레오와 내 아이는 미국인 선생님의 지시와는 정반대로만 움직였다.

아이는 우리를 속인 것일까? 아이는 숲길 체험을 하다가 호랑이를 만났고, 헬리콥터를 타고 소풍을 갔고, 유치원 버스가 아파트를 박았는데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 말에 놀라는 시늉을 하자 아이는 호랑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서 나타났는지, 어떻게 호랑이로부터 도망쳤는지 허튼 이야기를 끝도 없이 늘어놓는다.

리베카 솔닛은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삶의 실패를 변명하기 위해,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이야기한다고 한다. 그러니 모든 이야기는 삶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절반은 사실이고, 삶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절반은 허구라고 할 수 있다. 형들처럼 수영을 하고, 교통사고가 나도 다치지 않고, 숲에서는 호랑이를 만나는 세계, 그리고 영어를 못해서 답답한 나 대신 미국인에게 말을 해주는 친구가 있는 세계는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아이의 '이야기'가 창조해낸 세계다. 이것은 단순한 거짓말도, 말이 되지 않는 허튼 이야기도 아니다. 아이의 삶, 기대, 꿈, 실패가 녹아 있는 '삶의 이야기'다. 아이는 이야기를 하며 숲을 거닐기도 하고, 영어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살아남을 방법도 찾고 있다. 그러니 아이의 허튼 이야기는 사실보다 더 진실하다.

아이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하루하루를 '허튼 이야기'로 버티고 있다면 허튼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감싸 안는 더 큰 진실이 되기도 한다. 어떤 허튼 이야기라도 저마다의 삶과 꿈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의 진실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친구의 허튼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나의 허튼 이야기에 담긴 진실을 응시하는 것, 나를 지배하고 옭아매는 이야기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이야기를 하는 것, 바로 그 속에 진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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