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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의 시와함께] 거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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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구식(1955~ )

아버지는 계속 딴말만 하시더라

논뚝 위에 허옇게 배를 내놓고 죽은 지렁이, 아버지는 그걸 자꾸 거머리라 우기시더라, 하긴 날품보다 지독한 거머리논, 거기서 닳아빠진 손톱과 흘린 피를 생각하면 그러실 만도 하겠더라, 그날밤 아버지는 논배미를 빠져나가는 한 사발의 피를 보고 비명을 지르시더라.

이놈아, 내 피 내놓아라, 내 피!

중략

아버지들은 늘 딴청을 피웠다. 제 자식이 태어났을 때에도 손가락, 발가락 개수만 세어보고 희멀건 웃음만 보이셨다 하더라. 새벽에 일터에서 돌아와 조용히 이불을 들추고 어린것들의 발가락에 가만히 얼굴만 비비셨다 하더라. 아버지들은 남몰래 제 새끼들의 발가락이 커가는 것을 참 좋아하는 거라, 딴청은 평생 그의 놀음인 거라, 퇴임 후 아버지들이 밖에서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는 다들 모르는 거라, 놀이터나 아파트 단지 아래, 목마를 몇 대 데리고 다니며 아이들을 태워주는 아버지도 있다더라, 한낮의 오후가 되어 아무도 없는 시간엔 조용히 목마의 귀를 흔들어 보는 게 아버지들의 삶인 거라, 평생 키우던 돼지, 소 다 사라지고 밭도 떠나 도시로 나와 솜사탕 수레를 끌고 다니며 놀이공원 앞에서 솜사탕을 하루종일 부풀리는 할아버지들이 다 아버지들의 딴청인 거라, 배춧잎 같은 이불 속으로 들어가 혹시 너무 늦게 발견될지도 모르니까, 남은 삶은 자식들에게 피해 주는 게 싫어서… 옆에 월세와 전기료와 수도료를 내려놓고 이승에서 마지막 딴청을 피우는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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