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전,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프랑스 신체미술가 오를랑(Orlan)의 회고전에 다녀왔다. 은 초반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부터 최근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증강 현실을 유도한 작품까지, 50년의 작품세계를 시기별로 구성한 대규모 전시로 10월 초까지 열린다. 이날 오후 3시부터 열린 작가와의 대담 시간에서 만난 오를랑은 69세란 나이가 무색하게 에너지와 열정이 넘쳤다. 흑백 반반씩 염색해 높이 치솟게 한 헤어스타일에서 남성과 여성, 성(聖)과 성(性), 기술과 예술 같은 이분법적인 요소들이 상호보완의 실체들로 공존하는 그녀의 예술세계가 엿보였다. '주어진 것, 타고난 것에 맞서는 투쟁'을 작업의 모토로 삼은 작가에게 자신의 몸은 작품의 매체이자 목적이 된다. 초반 작품은 여성의 신체에 대한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지면서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회에서 차별받았던 여성인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예컨대 나 는 여성을 성녀/창녀로 구분하는 남성들의 고질적인 잣대를 통렬하게 비난하는 작품이다.
오를랑을 국제 미술계의 핫이슈로 만든 건 연작이다. 1990~93년에 걸쳐 모두 9회 실행된 이 퍼포먼스는 성형외과 의사, 비디오 촬영팀으로 구성된 일종의 멀티미디어 쇼이다. 오를랑은 국부마취된 상태로 동양철학이나 라캉의 정신분석학 책을 낭독했고, 한 번은 수술 장면이 지역방송에 생중계되기도 했다. 오를랑은 포스트모던적인 시도로 여성의 이미지를 용해하고 재구성했다. 서양고전 그림에 나타난 여성 이미지, 즉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턱, 다빈치의 '모나리자'에서 이마 등을 따와 성형 및 합성하며 시대적 배경이나 역사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결정하는 미의 기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지막 수술에서 주저하는 의사를 설득해서 이마에 심은 두 개의 초승달 모양으로 튀어나오는 뿔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이는 연작으로 이어진다. 포토샵으로 아프리카 조각상이나 아즈텍 가면과 혼종(hybrid)된 작가의 얼굴은 잔혹한 서구식민화 역사를 재조명하는 동시에 화합하는 신인류의 모습을 제시하기도 한다. 자신의 피부세포와 흑인의 태아세포, 포유동물의 세포들을 교배하고 배양한 영상작품에서 작가는 신기원적인 생물학적 융합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말처럼 만 알고 있는 한국 관객들에게 엽기적인 작가라는 편견을 깨고 작품세계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기회였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소설 에서처럼 오를랑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통해 인류가 구원될 것이라는 비전을 보여준다. 그것은 인공지능(AI) 같은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 정신의 변화로 이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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