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달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던 5살 지능의 스무 살 청년 초원이.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라는 대사는 2005년 네티즌이 뽑은 최고의 명대사가 되었다.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 배형진 씨는 19세 때 '서브3'를 달성하고 국내 최연소 3종 경기 완주기록을 세우며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안겨 주었다. 오직 뛰는 일밖에 잘하는 게 없었던 남해 다랭이마을의 일등효자 '기봉이'도 마침내 우승상금으로 어머니에게 틀니를 선물하며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이처럼 장애를 극복한 영화는 드라마의 흥미에 인간승리 미담까지 더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필자가 그 노인과 마주친 건 7, 8년 전, 퇴근길 집 앞 도로였다. 막 땅거미가 밀려오던 저녁 눈앞에서 이상한 그림자가 하나 움직이고 있었다. 도저히 보행이라고 볼 수 없는 불편한 걸음에 기형적 몸짓. 노인은 중풍환자였다. 아마 최근에 사고를 당한 듯했고 저 몸으로 재활운동에 나선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저런 불편한 노인을 혼자 내보내다니, 가족들을 원망할 새도 없이 노인의 위태로운 보행은 계속되고 있었다. 문화센터를 한 바퀴 돌아오는 200m 남짓한 거리, 이것이 노인의 코스였다.
이후로도 노인의 위태로운 보행은 가끔 눈에 띄었다. 노인은 지팡이를 들기조차 힘겨워 보였고 한 걸음 한 걸음에는 고된 삶의 무게가 실리고 있었다.
6개월쯤 지난 후에 퇴근길에 우연히 노인과 마주쳤는데 지팡이가 사라지고 없었다. 체중을 지탱해주던 지팡이를 버려도 될 만큼 다리에 힘이 붙은 듯했다. 그러나 여전히 노인의 걸음은 불편했고 문화센터 순례길도 여전히 번거로워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필자에게도 '중병'이 찾아와 어쩔 수 없이 3년 남짓 집을 떠나 있어야 했다. 불행히도 필자의 관심은 그 노인에까지 미칠 수 없었다. (그 노인보다 내가 더 위험한 상황임이 분명했으니까) 이렇게 노인과의 만남은 내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혔다.
'악머구리'처럼 달려들던 죽음의 그림자를 겨우 털어내고 집으로 돌아 나오던 길, 난 차창 밖으로 벌어진 풍경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문화센터를 돌아오는 한 어르신, 분명히 그 노인이었다. 꼿꼿하게 선 허리, 힘차게 내딛는 발걸음, 노인은 거의 정상인에 가깝게 보행을 되찾은 것 같았다. 노인의 불굴의 의지는 3년 만에 병마를 떨쳐 냈던 것이다.
불굴의 의지로 재활을 통해 건강을 되찾은 사람은 많다. 그러나 5년 동안 계속 한 노인의 '인간 승리'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았고 나 자신도 동병상련 속에서 그 투병과정을 경험했기에 노인의 극복기가 훨씬 내게 울림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 인간 승리가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데서 노인에 대한 경외감은 더 커진다. 몇 년 후면 노인의 약간 '언밸런스'한 보행마저 잡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오늘도 해거름 문화센터 앞길에는 그 어르신의 '인간 승리' 다큐멘터리 필름이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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