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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월은 가도 기록은 남는다

청도 부군수로 재직할 때다. 산수가 수려하고 곳곳에 역사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산자수명(山紫水明)의 고장 청도를 보면서, 이 땅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그 땅과 그 속에서 살아온 민중들의 삶과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으면 했다.

청도군은 운문산, 문복산, 가지산, 비슬산 등 해발 1천m가 넘는 거친 산봉우리에 둘러싸인 천혜의 고장이다. 국운이 기울어 신라에 점령되기 전까지 그 누구도 넘보기 쉽지 않았던 강한 나라 이서국(伊西國) 또한 지형 덕분이었을 것이다. 청도 땅에는 이야기도 많다. 수천 년 아니 그 이상 겹겹으로 둘러싸인 삶의 여정들이 그 땅과 함께 이어져 오고 있다.

이 소중한 땅에 대한 기록을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 역사를 비켜가지 않으며, 땅과 함께한 민초들의 삶의 여정 또한 오롯이 남아 후세에 전해질 수 있도록 의미 있는 기록이 되었으면 했다.

다행스럽게도 매일신문의 빼어난 필진들이 기획과 기록에 참여했다.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기록물을 남길 수 있도록, 험준한 산하 곳곳을 발로 누볐던 박종봉 편집위원과 정우용 기자 그리고 매일신문 많은 분들의 고마움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회의를 거듭한 결과, 기록물은 산줄기를 밟아 먼저 그곳에 대한 이해를 키우고, 나아가 거기에 배어 있는 삶의 흔적들을 기록해 두는 데 중점을 두기로 했다. 제목을 '운문(雲門)서 화악(華岳)까지'로 정한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험한 산악과 지형을 누비며 글을 쓰고, 사진에 담는 일. 그리고 이를 그래픽으로 남겨 시각화하고, 신문 연재에 이어 한 권의 책으로 묶는 데 2년의 시간이 걸렸다. 필자들은 기록을 위해 산줄기 곳곳을 밟으며, 산과 물 등 지형과 마을에 전해지고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 낙동 정맥과 비슬 기맥, 운문 분맥과 화악 분맥으로 나누어 골짜기 한 곳 한 곳 그 어디도 소홀하지 않았다. 땅과 함께 살았던 이서국과 천년 신라의 수많은 역사의 현장도 찾아 나섰다. 억산'육화산'용각산'화악산 등 겹겹으로 이어진 산과 강은 물론 땅과 함께한 설화와 구전, 마을의 지명과 그 속에 담긴 기층민들의 삶에 얽힌 이야기 역시 오롯이 담았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퇴색된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나이 든 어르신들의 마음과 생각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는 고작 길어야 100년. 현장에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어지면, 그 이야기도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다. 기록은 그래서 더 소중하다. 숱한 사연이 담긴 시간의 여정은 모아 두지 않으면 산산이 부서지며 이내 사라진다. 땅을 지키고, 그 이름을 부르고, 산줄기와 강에 배어 온 이야기들은 조금만 늦으면 이내 풍화(風化) 되고 말 것이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또한 그렇다. 그러기에 세계인들에게 대한민국의 우수한 문화를 알려 온 여정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지난 1997년 경주 '보문벌'에서 열린 이래 8차례 국제 행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대표 문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경주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터키 이스탄불 등 해외에서 개최한 '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통해 대한민국의 문화를 세계인들에게 선보이고, 이를 통해 국격(國格)을 높였다. 내년이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에서 대한민국의 우수한 문화 콘텐츠를 전하게 될 국제행사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그 여정들을 '스토리텔링화' 하고 기록으로 남겨,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메모리얼'에 담을 것이다. 문화는 기록을 통해 전달되고, 기록은 문화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것이 자명하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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