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가 정벌 때 만든 음식 플로프
3세기에 스테인리스 합금강 이미 제련
거대한 돈줄로 동서양 경제 이끌었고
초원길·사막엔 예술·인문학 녹아있어
실크로드의 중심, 우즈베키스탄 동서로 주옥같이 박혀 있는 오아시스의 도시들, 타슈켄트,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를 다녀왔다. 짱짱하게 작열하는 태양은 너무나 맑고 밝아 그림자도 남기지 않을 정도였다. 다행히 습기 없는 마른 대기는 피부에 끈적이지 않고, 그늘에만 들면 견딜 만하니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아침저녁으론 청량하리만큼 기온이 내려가니 그래서 이 땅에도 이름 없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진한 삶을 일구나 싶다. 본래 사막 위에 자리 잡은 오아시스였으니 숲이 울창하게 우거질 리 만무하겠으나, 소련시대에 대규모 인공식림으로 공원 속에 들어앉은 참한 현대적 도시가 공존하게 됐다.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온통 모스크(사원)와 미나레트(첨탑), 그리고 마드라사(고등교육기관)들이고 무덤궁전들이니 찬란했던 이슬람문화의 지평선을 어김없이 만들어낸다. 곳곳마다 극치의 기하학으로 신을 찬미한 아라베스크의 문양들은 보는 이의 환성을 자아내게 한다. 거기에는 또한 신비의 이야기들이 옹기종기 깃들어 있었으니 되뇌어보면 어떨까.
사마르칸트에는 비비하늠 모스크가 있다. 14세기 칭기즈칸보다 더 넓은 지역을 정복했다는 절름발이 아미르 티무르가 인도 원정 중이었을 때, 왕비 비비하늠은 자기 이름을 딴 최대의 아름다운 모스크를 짓고 있었다. 젊고 미남인 건축사는 아름다운 왕비를 사모한 나머지 모스크를 짓는 고통(완공되면 비밀유지 차원에서 건축사를 죽임)을 빙자로 딱 한 번의 키스를 허락해달라고 줄곧 떼를 썼다. 비비하늠은 고민 끝에 모스크의 조기 완공을 조건으로 뺨에 키스를 허락하나, 그곳엔 지워지지 않는 빨간 멍울이 생겨버렸다. 인도를 정복하고 돌아온 티무르는 그간의 일들을 듣고서 대노했고, 건축사를 미나레트에서 떨어뜨려 죽이고, 모든 일이 여성의 아름다움에 기인한 것인 만큼 이후부터 여성들은 얼굴을 덮어 가리라고 선포하니, 오늘의 차도르 기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실크로드의 선상에는 가는 곳마다 플로프, 생쌀에다 양고기, 당근, 과일을 넣고 목화기름 등으로 볶은 기름밥이 발달해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 정벌에 나서며 사막과 등마루를 횡단할 때, 태양과 열사(熱砂)에 못 이겨 병사들이 무수히 쓰러지는 걸 목격했다. 대왕은 에너지가 더 끈기있게 발산될 수 있는 강력한 먹거리를 원했고, 궁리 끝에 기름에 밥 말은 것 같은 플로프라는 기가 차는 음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진짜 귀한 얘기를 듣게 된 것은 아랄해 남쪽, 호레즘 왕국의 수도 히바의 한 박물관에서였다. 거기에는 내식성(耐蝕性)이 강한 강철로 만든 무기류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가이드 설명이 스키타이의 영향이었는지 AD 3세기 초부터 스테인리스 합금강의 제련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게 아닌가! 필자에겐 귀가 뻥 뚫리는 소리였다.
우리 역사에서도 한때 우수한 철기문화를 가진 적이 있었지 않은가! 필자가 고구려의 옛 땅, 중국 집안의 광개토왕릉을 보러 갔을 때, 거기 박물관에서도 광개토왕릉에서 나왔다는 녹 하나 쓸지 않은 하얀 스테인리스 합금강 조각을 봤었다. 또 통일신라시대에 30여 년간 20t에 가까운 구리(銅)로 빚어 낸 불가사의한 에밀레종, 그 종을 매달고 있는 직경 8㎝도 안 되는 걸쇠가 스테인리스 합금강이라 하고, 오늘의 선진 제철기술로도 흉내 내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다.
어떻게 합금강을 만들었는지 되쳐물었다. 그런데 가이드 설명이 기상천외했다. 쇳조각을 닭에게 먹이면 모래주머니에서 강력한 산(酸)이 나와 녹이고, 녹지 않은 부분은 배설되는데, 그 배설물을 모아 다시 정제(精製)함으로써 스테인리스 합금강을 얻었다고 하지 않는가! 또 옥이나 진주를 정제할 때도 비둘기에게 먹여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하니, 이 제련 비법이 가능한 진실이라면 가야 제철기술의 2천 년 신비가 벗겨지는 단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여하튼 전문가들이 실험부터 해볼 일이다.
이렇게 실크로드는 거대한 돈줄로 동서양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며 인류 역사를 견인했는가 하면, 또한 모래사막과 초원길 여기저기에는 사람들의 삶 이야기가 묻히고 흩어지며 예술과 인문학을 더욱 살찌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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