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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민의 에세이 산책] 노래방에서 피카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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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가 그린 '아비뇽의 처녀들'은 입체파를 연 독창적인 작품이지만 많은 부분은 다른 작품들을 참고한 것이다. 이 작품의 구성은 세잔의 '텐트 앞의 목욕하는 여자들'에서, 주름과 접힌 부분이 깊고 풍부해 보이는 효과는 엘 그레코가 남긴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인 '다섯 번째 봉인의 개봉'에서 차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카소는 "서툰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했는데, 그는 여러 화가들의 작품을 모방하는 방식으로 연구하면서 자신의 작품에 여러 위대한 걸작들을 새롭게 '재배치'하는 방식의 작업을 좋아했다. 피카소가 70세에 그린 '한국에서의 대량 학살'은 고야의 1814년 작품인 '5월 3일의 총살'을 참고한 것이며, 1957년에 그린 '시녀들'은 벨라스케스의 같은 제목의 작품을, 1903년에 그린 '삶'은 고흐의 작품인 '슬픔'을 차용한 것이다. 그는 마치 장난감을 선물받은 아이들이 장난감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아보려고 해체해 보듯이 위대한 화가들의 작품을 따라 그리면서 작품의 구성 원리, 형태와 논리를 연구했다.

그러나 피카소가 평생의 목표로 삼았던 것은 세잔이나 벨라스케스와 같은 위대한 화가가 아니었다. "나의 어린 시절 그림들은 그림대회에서 단 한 번도 뽑힐 수 없었다. 나에게는 어린이다운 서투름이나 소박함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곱 살의 나는 이미 지나칠 정도로 치밀하고 정확하게 그렸다. 그래서 나는 평생 어린아이처럼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작업실이 늘 아이들로 북적댄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피카소는 아이들과 위대한 화가들을 모방함으로써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되어 보려 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아빠, 엄마가 되거나, 동물이나 로봇, 자동차가 되어 보는 따라하기 놀이를 하듯이 그는 죽기 직전까지 서른 살 청년처럼 작업을 하며 따라하기 놀이를 했다. 피카소의 창조성은 이 '따라하기'에 그 비밀이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유연해지려면, 나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시켜 좀 '물렁한 인간'이 되려면, 누군가를 모방하면서 또 다른 내가 되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늘 입는 옷만 입고, 가는 식당만 가고, 먹는 음식만 먹고,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있다면 '딱딱한 인간'이 되었다는 뜻이다. 피카소처럼 그림 그리는 재주가 없다면 오늘은 노래방에라도 가보면 어떨까. 노래방에서 피카소처럼 걸그룹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트로트도 불러보자. 애절한 발라드도 불러보자. 노래방만큼 단시간에 많은 변신을 할 수 있는 곳도 없지 않은가! 요즘 가슴이 답답하고, 싱거운 글이 자꾸 나오는 것도 노래방에 다녀온 지 너무 오래된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가면 꼭 나도 '엑소'로 변신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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