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큰 자랑거리가 없는데…." 짧게 한숨을 쉬는 이성락(55) 바른등신경외과 원장의 표정에서 부담감이 느껴졌다. 쉽게 입을 떼지 못하는 그에게 "서예 좀 하신다면서요?"라고 운을 뗐다. 그는 미리 꺼내놓은 도록을 펼치더니 "지난해 대한민국 죽농서화대전에서 대상을 받았다"며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
이 원장이 작업실을 보여주겠다며 나섰다. 사용하지 않는 병원 내 검사실을 취미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문을 열자 오래된 의료기기들과 서예용품이 어우러져 있다. 그는 매일 점심 시간마다 이곳에서 문인화를 그린다. 수십여 점의 작품들이 작업실 한쪽에 아무렇게 쌓여 있었다.
이 원장은 일필휘지로 난초를 그려 '정헌'이라는 낙관으로 마무리했다. 그림을 그리며 표정이 한결 편안해진 이 원장이 농담을 건넸다. "정헌은 스승이 지어주신 호(號)인데 '바른 집'이라는 뜻입니다. 병원 이름과 뜻이 통해서 병원 홍보용으로도 안성맞춤이죠? 허허."
◆'한 일(一)' 字로 시작된 서예
이 원장은 "1987년 경북대 의과대를 졸업하고 대구파티마병원에서 근무할 당시만 해도 문인화가 습작 수준이었다"고 했다. 지난 2000년 개원한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문인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지난 16년 동안 그는 문인화의 중심 주제와 현대 문인화의 화두를 찾기 위해 고뇌하며 영남서화의 향기를 좇는 작가가 됐다. 지난해 대한민국 죽농서화대전에 출품한 그의 작품 '묵죽'은 700여 점의 출품작 가운데 대상을 수상했다. "문인화는 과거부터 전문작가뿐만 아니라 사대부 선비들도 즐기는 취미였어요. 전문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죠. 프로작가가 아닌 제가 대상을 받은 데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이 원장은 초등학교 때 신문지에 '한 일(一)'을 그리며 처음 붓을 잡았다. 반듯하게 그린 '一'자 하나로 선생님에게 스카우트(?)된 이 원장은 방학까지 반납하며 서예에 매진했다. 학원이 없던 시절, 교본 한 권이 마르고 닳을 정도로 화선지에 따라 그렸다. 그가 "서예 교육은 꾸준한 수련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예술"이라고 하는 이유다.
이 원장은 "문인화란 단순히 사물의 형태를 묘사하는 것에서 나아가 작가의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그가 문인화에 매료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강렬한 인상을 주는 추상화와 비슷하다. 이 원장은 "매화는 겨울에 모진 눈보라를 헤치고 피는 꽃이죠. 문인화는 매화를 역경 속에서 피어나는 하나의 생명으로 표현하는 예술입니다."
그는 "우리 것이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에서 서예를 하는 젊은 작가들은 능력을 꽃피우지 못하고 사라져요. 서예가 서양화보다 인기가 없어 작가들이 빛을 못 보는 거죠. 우리도 문인화를 높게 평가하며 적극적으로 융성하는 중국을 본받아야 해요."
◆척추질환은 치료보다 진단이 먼저 돼야
이 원장은 누군가를 만나면 허리부터 눈이 간다. 척추가 건강을 상징하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이 기자님은 허리 상태는 비교적 좋은데 근력이 조금 떨어져 보이네요. 거북목도 약간 있어요.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많이 쓰면서 거북목 환자가 크게 늘었죠." 이 원장은 거북목을 치료하는 자세를 직접 보여줬다. '1시간에 10분씩 의식적으로 턱을 당긴다'는 간단한 방법이다. "특별한 치료를 받는 것보다 이 자세를 반복하는 것이 훨씬 좋아요. 전문가의 조언이니 믿으셔도 됩니다."
그는 "척추질환이 생기면 꼭 전문의에게 먼저 진단을 받으라"고 조언했다. "환자들 중에는 허리가 아프거나 다리가 저린데 통증치료만 받으며 수개월 고생하다 병원을 찾는 경우가 있어요. 척추 관련 질환은 일단 신속하고 정확한 진단이 앞서야 하고, 진단에 맞게 통증 등을 완화하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지금은 거꾸로 돼 있는 거죠."
이 원장은 작은 나눔을 실천해왔지만 드러내길 꺼렸다. 그는 후원회를 통해 일대일 결연을 한 푸에르토리코 아이에게 매달 조금씩 20년간 후원해 어엿한 성인으로 키웠다. 2012년부터 3년 동안 수성구의사회 회장을 하면서 회원들과 다함께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차상위 계층에 매년 500만원씩 기부해 힘을 보탰다.
그는 "이런 자잘한 이야기들은 부끄러우니 쓰지 말아 달라"며 손사래를 쳤다. 개원 초 허리디스크가 파열된 베트남 여성과 요추간판 탈출로 고생하던 중국 남성을 무료로 수술해준 기억도 겨우 떠올렸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면 그뿐, 스스로 되뇌며 남에게 내세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진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