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9988! 빛나는 실버] 암 이기고 강사로 인생 2막 한길수 씨

"잉여의 삶, 그저 얻었으니 베풀어야죠"

강사로 인생 2막 한길수 씨
강사로 인생 2막 한길수 씨

봉사는 타인에게 재능을 나눠주고 시간과 물질을 베푸는 것이다. 나눔은 근본적으로 이타(利他)행위지만 거기에는 어느 정도 선(線)이 있다. 재력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나 자신의 건강이 허용되는 범위 정도 등. 이 선을 넘어서는 자선은 아마 성인(聖人)의 영역이 아닐까.

한길수(70) 씨는 외견상 봉사나 베풂과는 크게 관련이 없어 보였다. 우선 고혈압, 당뇨, 뇌졸중 등 성인병과 세 번에 걸친 암 수술 경력을 보면, 봉사는 차치하고 자신 한 몸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였다.

빚보증과 부도, 몇 번의 사기로 전 재산을 날린 이력도 그에게 적선(積善)은 기대하기 힘든 영역이었다. 그러나 극한의 투병 과정과 빈곤의 삶 속에서도 나눔과 봉사는 15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었다. 재산과 건강이 넉넉지 않아도 얼마든지 나눔이 가능하다는 소중한 교훈을 일깨워준 한길수 씨를 만나보았다.

◆암 투병 과정서 자원봉사 눈 떠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 씨는 서류뭉치를 펼쳐 놓았다. 자신의 병력 진단서였다. 서류엔 심근경색, 뇌졸중, 당뇨부터 대장암, 간암 수술 내력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2002년에 심장 질환 발병 후 2015년 암 수술까지 그가 얼마나 병마에 시달려 왔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투병 과정을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고 신체도 조금 야위었을 뿐 전체적으로는 건강에 이상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서류엔 그의 봉사 활동 내력이 같이 적혀 있었다. 이런 몸으로 봉사가 가능할까 의문이 들었다. 이력서엔 백혈병소아암 돕기 자선공연, 양로원 정기위문공연, 무료급식 봉사, 마술공연 등 활동내역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봉사시간이 그의 투병기간과 일치한다는 점이었다. "세상에, 자신도 암환자면서 무슨 위문공연을 다닙니까?"라고 물었다. "투병 중에 오히려 시간이 남더라고요. 그래서 색소폰, 하모니카, 마술을 하나씩 익혀 놓았습니다. 배운 게 아까워 어디 쓸 곳이 없나 둘러보다가 봉사활동에 뛰어들게 되었지요." 이렇게 시작한 봉사는 백혈병어린이 돕기 공연 4천68시간에 전체 마일리지는 1만4천 시간이 넘어섰다.

◆빚보증'사기에 넘어가 전 재산 탕진

성주에서 8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한 씨. 가난과 결핍은 그를 직업군인의 길에 들어서게 하였다. 만 27년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했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사기꾼들이었다.

"1993년 전역 무렵 고향 후배가 접근해 자기 공장의 공장장을 맡아달라는 겁니다. 기사가 딸린 자가용을 대주겠다며. 단 지금 급전이 필요하니 빚보증을 서 달라면서요." 은행 대출 후 후배는 그대로 연락이 두절되었다.

상심한 마음에 귀농을 결심했는데 이번에는 토지 구입 과정에서 터무니없이 비싸게 땅을 샀다. 집안 살림이 거덜났고 당시 대학에 다니던 자녀들은 휴학, 군 입대를 서두르며 진로를 바꿔야 했다. 술에 의존하는 시간이 계속되며 한 씨는 노숙자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밑바닥에서 건강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그는 어느 날 구급차에 실려 입원하게 된다.

◆투병 경험 살려 건강강좌도

절망에 빠져 있던 한 씨가 몸을 추스르며 재활의 의지를 다지게 된 것은 병상에서였다. 그동안 방치했던 자신의 삶이 너무 후회스러웠다. 틈나는 대로 악기와 마술, 민요를 배운 것도 이때부터였다.

죽음의 문턱에서 나와서야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이때부터 봉사는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이런 노력은 마침내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그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2006년 한 언론사에서 주는 '청소년지도자대상'을 받았다. 얼마 전 자신의 일대기를 담은 문집을 냈고, 그간의 투병기를 정리한 '이안신서'(耳眼新書)를 출간했다. 나눌 재산도 많지 않고 건강, 체력도 모자라지만 나누려는 마음만 있으면 모든 것들이 넉넉히 채워진다는 한 씨. "2003년 암 진단 이후 제 삶은 '잉여의 삶'입니다. 거저 얻었으니 거저 베풀어야죠." 건강강연(무료) 요청 010-2443-2277.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