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혁신의 부재

스탈린이 추진한 소련 경제 개발의 성과는 눈부셨다. 소련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1차(1928∼1932년)와 2차(1933∼1937년) 5개년 계획 기간에 국민총생산(GNP)은 연평균 9.4%에서 16.7%로 증가했고, 1인당 소비액은 3.2%에서 12.5%까지 늘었다. 당시 자본주의 블록은 대공황으로 몰락 일보 직전에 있었으니 이런 수치는 더욱 돋보였다.

하지만 대부분 허수였다. 실제 GNP 성장률은 연 3∼4.9%에 지나지 않았고 1인당 소비액도 1, 2차 5개년 계획 기간 중 1.9%밖에 늘지 않았다. 더 주목할 것은 이런 초라한 성과도 혁신이 아니라 노동력이란 생산요소의 집중 투입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그 생산요소에는 사람의 목숨도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스탈린 시대에 철강 19t이 생산될 때마다 소련 인민 한 명이 사망했다. ('증오의 세기' 니얼 퍼거슨)

요소의 대량 투입에 의한 경제 성장은 소련만이 아니었다. 우리 경제도 그런 방식으로 덩치를 키웠다. 그 한계를 뼈아프게 지적한 이가 미국 프린스턴대 폴 크루그먼 교수다. 그는 1994년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아시아 기적의 신화'(The Myth of Asian Miracle)란 논문을 통해 아시아 각국의 엄청난 성장은 생산요소(자본'노동)의 집중 투입에 따른 것일 뿐이며, 생산요소 투입은 무작정 늘릴 수 없기 때문에 성장은 한계에 부딪힌다고 경고했다. 그의 경고대로 4년 뒤 아시아 국가는 극심한 경제 위기를 맞았다.

물론 요소 투입에 의한 정부 주도 경제 성장이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대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경제 개발 초기 단계에서만 먹힐 뿐이다. 경제가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바로 혁신이다. 서양이 여전히 잘사는 이유다. 문제는 혁신이 관료의 머리에서는 나올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가 경제 활력 저하에서 벗어나려면 이미 효력을 다한 관 주도의 경제 운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세계 자유주의 경제학자의 모임으로 9일 개막한 '2017 몽펠르랭 소사이어티 서울총회'에서도 같은 소리가 나왔다. 스페인 카밀로호세세라대의 페드로 슈워츠 교수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한국의 국가 주도 성장은 끝났다. 경제적 자유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늘부터 일을 시작하는 새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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