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중국 불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화엄경'에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핵심 원리로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예는 신라시대 원효대사에 얽힌 고사이다. 원효대사는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 유학을 가기 위해 길을 가던 중 당항성 근처 어느 무덤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잠결에 목이 말라 근처에 있는 물을 마셨는데, 그 물이 꿀맛 같았다. 그런데 날이 새어서 보니 자기가 마신 물이 해골에 괸 물이었음을 알고 토하려고 하다가 문득 생각을 하게 된다. 물 자체는 변한 것이 없지만, 어제는 맛있게 먹었고, 오늘은 토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여기에서 원효대사는 더러움과 깨끗함뿐만 아니라 객관적이라고 믿었던 세계도 사실은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사람의 내면에서 세상을 받아들이고, 판단하고, 감성적 혹은 지적인 반응을 하고, 욕망을 하는 정신적 작용을 말한다. 여기에 가장 크게 관여를 하는 것이 바로 말이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싫어한다.'라는 생각을 한다고 할 때, 그 생각은 말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떤 말을 택하느냐에 따라 '그'의 다른 행동들에 대한 판단이나 반응이 달라지기도 한다. 하버드 대학의 로버트 로젠탈이라는 교수는 1960년대에 재미난 실험을 했었다.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심리 검사를 한 후, 아무 학생이나 찍어서 교사들에게 '이 학생들은 잠재력이 풍부한 학생들입니다.'는 결과지를 주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 학생들은 실제로 성적이 크게 향상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교사들이 지목된 학생들을 눈여겨보고,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해 주었으며, 학생들도 그 기대에 맞게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쟨 문제아, 쟨 해도 안 되는 아이'로 낙인을 찍어 일찌감치 포기했을 아이들도 '잠재력이 풍부한 아이'로 규정되는 순간 달라진 것이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말을 정치인들의 경우는 교묘하게 이용을 한다. 사람들의 시야를 좁게 만드는 말의 틀을 만들어 상대방을 흠집 내거나 자기를 지지하게 만든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프레임' 전략이다. 지난 대선에서 다른 지역과 달리 우리 지역에서만 가장 많이 이야기 된 것이 '배신자'와 '빨갱이'라는 말이다. 그 낙인이 찍힌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유세를 하고,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우리 지역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사람들은 복잡한 말에 앞서 낙인으로 작용하는 그 말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낙인은 진짜로 잠재력이 풍부한 아이의 재능도 묻어버릴 수 있다. 우리가 좀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의 영역에서도 '잠재력이 풍부한 아이'를 지켜보는 교사의 마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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