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주 월성 성벽서 제물 추정 인골 2구 첫 출토

1,500년 전 신라 때 묻은 듯…人柱 설화 뒷받침 사례 주목, 터번 쓴 '소그드인' 토우도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16일 인골이 발견된 신라 월성 서쪽 성벽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16일 인골이 발견된 신라 월성 서쪽 성벽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라의 천년 왕성인 경주 월성(사적 제16호) 성벽에서 약 1천500년 전 제물로 묻은 것으로 추정되는 인골 2구가 나왔다. 또 '소그드인'(중앙아시아에 살던 이란계 주민)으로 추정되는 터번을 쓴 토우(흙으로 빚은 인형)가 나오고, 병오년(丙午年) 간지가 정확하게 적힌 목간이 발굴된 것으로 확인됐다.

성벽 유적에서 인골이 출토된 것은 국내 최초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5세기 무렵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서쪽 성벽의 기초층에서 하늘을 향해 똑바로 누워 있는 인골 1구와 얼굴과 팔이 이 인골을 향해 있는 다른 인골 1구를 발견했다고 16일 밝혔다. 두 인골은 묶거나 저항한 흔적이 없고 똑바로 누워 있어 숨진 뒤 묻힌 것으로 판단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경주 월성은 제5대 파사왕 22년(101)에 성을 쌓기 시작했고, 신라가 망한 935년까지 궁성으로 쓰였다. 문화재청은 2014년 12월 개토제를 시작해 3개월간 월성을 시굴한 뒤 2015년 3월 본격 발굴에 돌입했고, 지난해 3월까지 1년차 조사, 이후부터 정밀 발굴에 나섰다.

인골이 출토된 서쪽 성벽은 5세기쯤 축조되기 시작해 6세기에 최종적으로 보수됐고, 문이 있던 자리는 유실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아울러 경주 월성 북쪽 해자에서는 독특한 모양의 토우(土偶'흙으로 빚은 사람 형상의 인형)와 월성의 역사적 가치를 입증하는 목간도 나왔다. 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되는 이 토우는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허리가 잘록해 보이는 페르시아풍의 긴 옷을 입었다. 연구소는 "당나라 시대 호복(胡服)이라고 불린 소그드인의 옷과 모양이 유사하다. 소그드인은 중앙아시아에 살던 이란계 주민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월성해자에서 새롭게 발굴된 목간은 모두 7점이다. 그중 한 목간에서는 '병오년'(丙午年)이라는 글자가 확인됐다. 작성 시점은 법흥왕 13년(526) 또는 진평왕 8년(586)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해자에선 신라 유적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된 곰의 뼈, 산림청이 희귀식물로 지정한 가시연꽃의 씨앗, 손칼과 작은 톱 등으로 정교하게 만든 얼레빗이 발견됐다. 이처럼 다양한 유물이 나온 해자는 5∼7세기와 8세기 이후의 건축 기법이 다소 다르지만, 500년 동안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인주(人柱)설화

제방을 쌓거나 건물을 지을 때 사람을 주춧돌 아래에 매장하면 무너지지 않는다는 내용과 관련된 설화.

중국에서는 상나라(기원전 1,600∼기원전 1,000년쯤) 시기에 성벽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제물로 쓰는 풍속이 유행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사'에 충혜왕 4년(1343) 인주 설화와 관련된 유언비어가 항간에 돌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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