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송 자연유산 그랜드슬램 ] <1> 40년 맞은 청송 주왕산국립공원

우리나라 12번째 국립공원, 영화·CF 단골 '주산지'로도 유명

주왕산국립공원을 포함한 청송군 전역이 1일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됐다. 사진은 주왕산의 모습. 청송군 제공
주왕산국립공원을 포함한 청송군 전역이 1일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됐다. 사진은 주왕산의 모습. 청송군 제공
1930년대 일제는 민족문화 말살정책을 추진하면서 주왕산 폭포에 대해 고유지명을 쓰지 못하게 했다. 주왕산을 들어서면서 있는 제1
1930년대 일제는 민족문화 말살정책을 추진하면서 주왕산 폭포에 대해 고유지명을 쓰지 못하게 했다. 주왕산을 들어서면서 있는 제1'2'3폭포가 그에 대한 흉터다. 2013년 80년 만에 이 폭포들은 용추'절구'용연폭포라는 본연의 이름을 찾게 됐다. 사진은 절구폭포 모습. 청송군 제공

세계가 청송의 자연유산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1일 유네스코는 프랑스 파리에서 집행이사회를 열고 지난해 12월 등재 권고된 청송 세계지질공원의 최종 이사회 승인을 결정했다. 아울러 세계 환경분야 석학들의 학술'논문 등에 활용될 세계지질공원망(Global Network of National Geoparks) 회원으로 등록될 예정이다. 절차가 마무리되면 세계 각국에서 청송을 연구하려는 학자들의 방문이 잇따를 전망이다.

청송은 또 국제슬로시티연맹(cittaslow'본부 이탈리아)에 지난 2011년 6월 국내 아홉 번째 도시로 가입한 후 꾸준한 활동과 교육을 통해 지난 3월 10일 재인증을 받았다. 청송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국립공원(주왕산),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국제슬로시티 지위를 모두 갖고 있다. 자연유산과 관련한 모든 것을 이뤄내 '청송 자연유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산세 깊고 때 묻지 않은 주왕산

주왕산국립공원을 빼놓고는 청송을 말할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청송은 주왕산이라는 빼어난 국립공원을 보유한 덕에 사람들에게 친숙한 지명이 됐다.

주왕산은 우리나라 중앙부에 해당하는 태백산맥의 지맥에 있으며, 대부분 청송군에 속하지만 일부는 영덕군에 속해 있다. 1976년 3월 30일 우리나라에서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면적은 총 105.595㎢에 달한다. 북서부에 태행산(933m)과 대둔산(905m)이 솟아 있고, 중앙부에 주봉격인 가메봉(882.8m) 등이 있다.

주왕산에는 용추'절구'용연폭포가 나란히 있으며 월외폭포가 있다. 또한 외주왕계곡과 내주왕계곡, 월외계곡, 내원계곡 등이 있으며 내주왕계곡의 절골계곡이 유명하다.

산세가 깊고 사람의 때가 묻지 않은 곳이 많아 천연기념물인 산양(제127호)과 수달(제330호), 붉은배새매(제323호)가 서식하고 있다.

주왕산국립공원에 속하면서도 주왕산만큼이나 이름난 곳이 바로 주산지다. 조선 경종 원년(1720년) 8월에 착공해 이듬해 10월에 완공된 농업용 저수지이다. 길이 200m, 너비 100m이며 평균 수심이 8m 정도다. 곳곳에 수십 년 된 왕버들이 자생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로 유명하며, 지금도 영화'드라마'CF 촬영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람 호칭서 유래 된 산 이름

주왕산 이름에 대한 유래는 여럿 있다. 그런데 그 유래에서 특이한 것이 사람의 호칭에서 따왔다는 것이다. 바로 '주왕'이다. 전국 수많은 산이 있지만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은 거의 없다. 주왕산을 주왕이 머물렀다고 해서 '주방산', 주왕이 은둔했다고 해 '대둔산'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첫 번째 유래가 바로 중국 주도라는 사람이 '주나라를 다시 일으켜 왕이 되겠다'며 스스로 후주천왕이라 칭하고 반란을 일으키다 실패해 주왕산으로 숨어들어 최후를 맞았다는 전설이 있다. 주도의 이름을 따 주왕산이라 불린다는 설인데, 연대와 내용이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또한 중국인이 수만 리 떨어진 주왕산에 숨어들었다는 것이 신뢰를 더욱 잃게 한다.

다른 설은 바로 강릉 김씨 시조인 김주원(金周元)에 얽힌 이야기다. 김주원은 김경신(신라 제38대 원성왕)과 왕좌를 다투다 결국 그에게 자리를 뺏긴 인물이다. 신라 제37대 선덕왕이 후사 없이 세상을 뜨자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7세손인 김주원이 임금으로 추대됐다. 당시 김주원은 경주에서 북쪽으로 20여 리(약 8㎞) 떨어진 외곽에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궁궐로 향하던 중 홍수를 만나 입궐하지 못하자 김경신이 화백회의를 장악하고 왕위에 오르게 됐다. 이에 김주원은 "임금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며, 내가 큰 비를 만난 것도 하늘의 뜻"이라 여긴 뒤 어머니의 고향인 명주(강릉 옛 지명)로 향했다. 명주의 길목에 기암으로 둘러싸인 산으로 들어간 김주원은 '명주군국'이라는 독자적인 국호를 세우고 그에 맞는 통치조직까지 구축한다.

사후에는 '주원왕'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지금도 주왕산 곳곳에 성벽을 쌓은 자리와 궁궐터 등이 남아 있다. 조선 후기 청송부사를 지낸 홍의호 (洪義浩'1758∼1826)의 '주왕산삼암기'에도 이같은 내용이 기록돼 전설의 설득력을 보태고 있다. 현재 주왕산에는 주왕이 무기를 숨겼다는 무장굴과 주왕의 군사가 훈련했다는 연하굴, 주왕의 시체를 화장했다는 범굴이 있다. 주왕의 장수가 지휘했다는 장군암, 주왕의 딸 백련의 이름을 따서 지은 절 백련암,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의 이름을 따서 지은 절 대전사 등이 있다.

매년 4월 주왕산에 수달래가 필 때면 왕이 되지 못한 비운의 남자, 김주원을 기리는 축제가 열리는데, 바로 '주왕산 수달래축제'다. 마을 사람들은 주왕산 수달래가 김주원이 죽어가며 흘린 피가 물든 것이라 믿고 있다. 때문에 수달래를 따서 주방천에 뿌리며 그의 넋을 기린다.

◆일제 강점기 흉터가 아직 남아

2013년 6월 18일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은 국가지명위원회를 열고 청송 주왕산국립공원 제1'2'3폭포의 명칭을 80년 만에 변경했다. 국토부는 주왕산 내 제1폭포를 '용추폭포', 제2폭포는 '절구폭포', 제3폭포는 '용연폭포'로 변경했다. 이 폭포들은 조선시대까지 고유의 명칭을 사용했지만 1930년대 일제가 민족문화 말살정책을 추진하면서 고유지명을 쓰지 못하게 명칭을 없앴고, 대신 주왕산 입구에서 들어가는 순서대로 제1, 2, 3폭포로 강제로 변경해 사용토록 했다.

주왕산 호랑이도 일제에 의해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사라진 주왕산 내원마을이 원래 '호랑이 마을'로 불렸다. 마을 주민들이 호랑이를 수호신으로 모시고 동제를 지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40년대 일제가 주왕산 금은광이삼거리에서 목재와 광물 등을 약탈해가다가 호랑이에게 습격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일제는 자신의 나라에서 대규모로 사냥꾼을 모집해 이곳 주왕산으로 집결시켰고, 일명 '주왕산 호랑이 소탕작전'을 벌여 이후로 주왕산 호랑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고 이 지역에서 전해오고 있다.

지난 2009년 청송군과 대구가톨릭대에서 주왕산 인근 청운리의 청운풍물놀이에 대한 연구'발표를 한 적이 있다. 이 연구과정에서 '1966년 2월 10일 청운분교 승격 독립교건립 모금기념행사'라는 제목의 사진이 한 장 발견됐는데, 이 사진에서 호랑이탈과 포수가 확인되면서 주왕산 호랑이 존재에 대한 구전에 대해 큰 신빙성을 실어줬다.

현재 주왕계곡 코스에 있는 내원마을 (호랑이 마을)은 20년 전 수질오염과 미관 저해 등으로 철거돼 등산객의 생태문화휴식공간으로 변신했다.

자문 = 대한관광경영학회 김영규·박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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