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중권의 새論 새評] 특검을 하자고?

서울대(미학과 학사·석사) 졸업.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전 중앙대 겸임교수
서울대(미학과 학사·석사) 졸업.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전 중앙대 겸임교수

文 대통령 아들 취업 특혜 증거 조작

대선 때마다 연출된 흑역사 반복돼

국민의당은 '열성 당원 일탈'로 치부

후안무치한 정치에 국민은 더 지쳐

대선 국면을 뜨겁게 달구었던 녹취록이 국민의당 측의 조작으로 드러났다. 문재인 대통령 아들 문준용 씨의 취업 특혜를 증언하던 목소리는 결국 국민의당 당원 이유미 씨의 동생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유미 씨가 제 동생을 데려다가 문준용 씨의 파슨스 스쿨 동료 역을 맡긴 것이다. 그것으로도 모자랐던지 그는 제 아들과 회사의 폰을 이용해 단톡방 상황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조작의 시도는 대선 때마다 늘 있었다. 1997년 대선에서는 신한국당의 이회창 후보 캠프에서 북한에 돈을 주어 휴전선에서 총을 쏴달라고 요청했다. 이른바 '총풍사건'이다. 2002년 대선에서는 병역 브로커 김대업 씨가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를 은폐하려고 병무청에서 대책회의를 했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바 있다. 이른바 '병풍사건'이다.

2007년 대선에서는 BBK 대표 김경준의 기획입국 음모설을 유포하기 위해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에서 편지를 조작했다. 당시 'BBK 소방수'를 자처했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편지가 가짜라면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문제의 편지가 조작으로 밝혀진 후에는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입수 경로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바꾸었다.

2012년 대선에서는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댓글 부대를 운용하여 대선에 개입했다가 발각이 난 바 있다. 경찰청이 나서서 그 사건을 서둘러 덮어버리지 않았다면 박빙의 승부를 펼쳤던 18대 대선의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아무튼 아직도 그 전모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이 사건으로 인해 박근혜 정권은 선거 후 심각한 정통성 시비에 휘말리게 된다.

한마디로 대선 때마다 연출되던 흑역사가 이번 선거에서도 반복된 것이다. 이렇게 대선 결과를 조작하려는 시도는 결코 가볍게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어느 영화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처럼 민중을 "개'돼지"로 여기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에서는 이번 사건을 일개 당원의 '일탈'로 치부하고 넘어가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사건을 일으킨 이유미 씨는 자신의 행위가 "당과 이준서 전 최고위원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상식적으로 이 사건의 스케일은 일개 열성 당원의 치기로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수준을 가볍게 넘어선다.

사건의 책임이 어디까지 올라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박지원'안철수 전 대표가 이 사기극을 알고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공당'이 국민들 앞에서 이런 중대한 폭로를 하려면 최소한 제보자를 직접 만나 확인하는 절차는 거쳤어야 한다. 기본적 절차마저 생략했으니 국민의당 지도부 역시 '미필적 고의'로 이 조작에 가담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 사건을 수습하는 국민의당의 방식이다. 이유미 씨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꾸며낸 일이라고 털어놓자"고 카톡 메시지를 보내자, 이 전 최고위원은 "대선이 끝나면 고소'고발은 모두 취하된다"며 만류했다고 한다. 대선이 끝나면 고소'고발을 취하하는 관행이 있다 보니 선거기간 동안 거짓 폭로를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과 달리 고소'고발은 취하되지 않았다. 국민의당에서 증거 조작사실을 스스로 밝히고 나선 것은 그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어차피 검찰 수사로 조작 사실이 드러날 것이 예상되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자진납세'해서 미리 꼬리를 잘라두는 게 상황을 수습하는 데 더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그보다 절망적인 것은 따로 있다.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특검을 도입해 "문준용 씨 특혜채용 의혹과 증거조작 두 가지 사건을 동시에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특검은 그 폭로가 사실일 때에나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들이 제시한 근거가 조작으로 밝혀진 상황에서 외려 특검을 요구하다니, 이참에 아예 정신줄을 놓아버리기로 한 모양이다.

국민의당에 특검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면 후안무치한 정치에 지칠 대로 지친 국민은 그 당의 해산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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