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당시 경북대학교 석좌교수였던 김윤상 교수의 퇴임을 맞아 행정학부에서는 야심찬(?)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다. 김 교수의 마지막 강의에 오랜 제자였던 몇 사람을 깜짝 초청해 '서프라이즈 행사'를 여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모든 사람은 토지에 대한 권리를 평등하게 가지고 있다'는 '지공주의'(地公主義)의 주창자로 1989년 헨리 조지가 쓴 '진보와 빈곤'의 축약본을 번역해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한 석학이다. 참석자 명단에는 노태강, 최승호 두 사람의 이름이 포함되었다. 당시 이들은 '윗선'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야인 신세였지만 스승의 퇴임 행사에 기꺼이 참석하기로 용단을 내렸다. 함께 참석하기로 한 필자 역시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행사 며칠을 앞두고 뜻밖의 실수로 거사(?)는 무산되었다. 거창한 행사를 싫어하는 김 교수가 퇴임을 순수한 강의로 마무리하고 싶다는 뜻을 주변에 전하면서 결국 행사는 막판에 취소되고 말았다. 몇 달 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MBC 사장이 될 두 사람이 한 프레임에 잡힐 수 있는 기회가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두 사람은 예매한 대구행 차표를 취소하며 깊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노태강(79학번), 최승호(80학번) 이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많다. 경북대 행정학과 동문일 뿐만 아니라 부당한 권력에 맞선 경험도 많이 닮았다. 대통령들이 찍어 내린 권력에 맞서다 전도유망했던 공무원과 언론인은 옷을 벗게 되었다. '윗선'의 부당한 지시에 맞서 싸우다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사회 정의를 위하는 그들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숱한 고초 끝에 한겨울 차디찬 거리에서 일어난 '촛불'의 힘으로 지난해 현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점도 비슷하다.
노태강 문화부 제2차관은 '나쁜 남자'로 유명세를 치른 인물이다. 노 차관은 문화부 체육국장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 2013년 대한승마협회 비리 감사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나쁜 사람'으로 지목된 후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대한승마협회 비리 감사는 사실상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예고편이었다. 대통령에게 찍힌 그에게는 좌천된 자리도 보장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아직도 있느냐"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법으로 신분이 보장되는 2급 공무원이자 가장이던 그는 결국 일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엄격한 위계질서 아래에서 모난 돌이 정 맞는 선례를 무수히 봐온 공무원 사회에서 '강직한 보고'를 올렸다. 나라와 국민에 대한 충성, 공직자로서의 소신과 용기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지난달 MBC 사장으로 돌아온 최승호 PD도 '윗선'의 부당한 지시로 쫓겨난 언론인이었다.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에 찍혀 좌천되고 결국 해고당했다. 지난 2010년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 등을 통해 정부를 비판하면서 이명박 정부와 당시 MBC 경영진의 표적이 되었다. 그는 해고된 뒤에도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변신, '자백'을 통해서는 국정원의 간첩 조작 사건을, '공범자들'을 통해서는 권력의 언론 장악을 규탄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왔다. 해고자의 신분으로 공정보도를 위해 뛰어온 세월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이제 그들은 돌아왔다. 노 차관은 코앞에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받으면서 현재 조직위원회에 상주하면서 대회의 성공을 위해 불철주야 뛰고 있다. 최 사장의 등장은 MBC가 '방송 장악'의 시대를 지나 '공영방송'의 새로운 항로를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MBC를 '만나기 싫은 친구'에서 '만나면 좋은 친구'로 바꿔놓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들의 무술년 새해 과업이 원활하게 진행돼 지난해 무산된 스승의 퇴임식에 같이 참석하기를 기대해본다. 학과 후배인 필자도 이들과 함께 교정을 찾는 날을 꿈꿔본다.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대통령실 "국민추천제, 7만4천건 접수"…장·차관 추천 오늘 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