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지방분권개헌] <2> 스위스

"2,300 지방정부 선의 경쟁, 나라 전체가 잘살아"

지난해 12월 14일 시자크 주민총회에서 주민들이 안건에 대해 찬성 의견을 표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4일 시자크 주민총회에서 주민들이 안건에 대해 찬성 의견을 표시하고 있다.

국가경쟁력 세계 1위, 1인당 국민소득 8만달러, 빈곤율 영국'독일'미국의 절반인 7.6%.'

이처럼 화려해 보이는 수식어를 모두 차지한 스위스는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굶어 죽는 이들이 속출하는 나라였다. 남성들이 다른 나라의 용병이 돼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했을 정도다. 불과 150년 만에 세계 최고 번영을 이룬 스위스의 경쟁력은 강력한 지방분권을 보장한 헌법에 있다.

◆지방자치단체 '위' 아닌 '아래' 보고 경쟁

스위스는 하나의 통일된 국가가 되도록 중앙정부를 두되, 각 주의 자치제도를 살려 자기 일을 스스로 해결할 권리를 가진 헌법을 1848년 제정했다. 이는 스위스 지역의 강한 지방분권 전통, 보수적인 구교 지역과 진보적인 신교 지역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탄생한 것이다. 언어와 종족, 종교가 모두 달랐던 스위스에 분권을 강조한 헌법은 갈등 봉합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었다.

스위스 연방헌법 제3조, 제31조, 제47조, 제51조 등을 통해 칸톤(우리나라 도'광역시에 해당하는 행정단위)은 독자적인 법인격과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다. 26개 칸톤과 2천324개의 코뮌(칸톤보다 한 단계 아래의 행정단위)은 행정, 입법은 물론 조세권까지 갖는다.

이렇다 보니 스위스의 26개 칸톤은 서로서로 '낮은 세금'높은 공공서비스'를 주장하며 유럽 내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한다. 또 마을의 갈등을 해결하고, 세금을 얼마나 거둘지 결정하고, 법을 만드는 모든 과정이 주민총회를 통한 주민들의 찬반 투표로 이뤄진다. 주민들은 세금을 낭비하는 정책을 저지하고 매년 세금을 낮춰 효율적으로 쓰는 방안을 검토한다. 스위스 경제학자 르네 프라이 교수는 "스위스는 2천300여 개의 지방정부가 서로 더 잘살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니 잘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민 총회서 정책 찬반 투표

스위스 헌법 제3조에 명시된 칸톤 주권에 따라 이뤄지는 고도의 자치는 지역이 당면한 갈등을 가장 빠르고 쉽게 해결할 수 있게끔 해준다.

2013년 '꽃보다 할배'의 배경이 되며 관광객들이 폭증하고 있는 스위스 루체른시. 인구 8만 명의 조용한 동네였던 루체른시는 최근 한국인과 중국인 관광객이 폭증하며 마을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대형 관광버스가 하루에도 수십 대가 오가며 주차난과 대기오염을 가중시키고 어린이들의 안전까지 위협하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된 것이다.

이에 대해 줄스 구트(Jules Gut) 루체른시 시의원(녹색자유당)은 "시민들의 불만이 날로 커져 바르셀로나처럼 관광객 거부 운동이 벌어질 정도였으나 최근 주민총회를 통해 '관광세 도입'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면서 "여행사와 대형 버스에 일정 세금을 부과하고 그 세금으로 관광버스 전용 주차장을 지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구트 시의원은 "자체적으로 조세권이 없다면 해결책을 찾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우리는 다른 문제들 또한 세금을 부과하고 그 세수를 갈등 해결에 사용하는 방식으로 쉽고 빠르게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사정에 맞지 않은 연방정부 정책도 지역에 맞게 소화 가능하다. 연방정부가 최근 주택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면 보조금을 주는 정책을 폈지만 루체른시는 100년 이상 된 고택이 80%가량 차지해 새로운 발전 시설을 설치하기가 힘들었다.

이에 루체른시는 오래된 고택의 방수'방풍'조명 등을 수리해 '에너지를 덜 쓰는 주택'으로 개조할 경우 지원을 해주는 방식으로 지역의 사정에 맞는 에너지 정책을 수립했고, 중앙정부에 이를 통보했다. 지역이 자신의 상황에 맞게 갈등의 해결책을 찾고 새로운 정책까지 제시하기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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