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설렘과 신비의 대륙 남미를 가다] ③안데스산맥 넘나드는 잉카 문명

일탈의 유혹 깊어진 쿠스코, 붉은 지붕들 풍경에 가슴 울컥

아르마스광장은 쿠스코 여행의 출발점이 되는 중심 광장이다. 북동쪽 계단 위에 우뚝 서 있는 대성당과 건축물들이 유럽의 광장에도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과 위용을 자랑한다.
아르마스광장은 쿠스코 여행의 출발점이 되는 중심 광장이다. 북동쪽 계단 위에 우뚝 서 있는 대성당과 건축물들이 유럽의 광장에도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과 위용을 자랑한다.
엄청 큰 크기의 돌을 사용하여 정교하게 축조한 삭사이와만은 쿠스코의 요새 역할을 했다.
엄청 큰 크기의 돌을 사용하여 정교하게 축조한 삭사이와만은 쿠스코의 요새 역할을 했다.
잉카문명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에는 원색의 잉카인들이 만든 소품들이 눈길을 잡는다.
잉카문명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에는 원색의 잉카인들이 만든 소품들이 눈길을 잡는다.
쿠스코의 골목길에서 만난 전통복장의 잉카여인들. 어린 리마를 안고 여행자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쿠스코의 골목길에서 만난 전통복장의 잉카여인들. 어린 리마를 안고 여행자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잉카문명의 중심 빛나는 쿠스코(Cusco)

잉카문명과 전설이 살아 숨 쉬는 마추픽추로 가는 길에 남미의 유럽이라 부르는 쿠스코를 만났다. 리마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잿빛 산맥들 위를 한 시간 이상 날아가면 잉카의 수도 쿠스코가 신비로운 자태를 점점 또렷하게 보여준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해발고도 3,400m의 고산도시 쿠스코는 깊은 산속의 붉은 지붕 오두막집처럼 보인다.

쿠스코는 잉카제국의 마지막 수도로 '세계의 배꼽'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사람의 중심에 배꼽이 있는 것처럼 쿠스코를 우주의 중심으로 여겼다. 하늘은 독수리, 땅은 퓨마, 땅속은 뱀이 지배한다는 잉카사람들의 믿음 때문일까, 하늘에서 보면 쿠스코는 마치 퓨마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여행자들은 쿠스코 공항에 내리면 두 번 숨이 막힌다. 고산지대의 희박한 산소에 처음 숨을 빼앗긴 여행자들은 붉은 테라코타 지붕의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선 이국적인 정취에 다시금 숨을 빼앗기고 만다. 붉은 지붕으로 빼곡히 채워진 쿠스코를 보면 마치 유럽의 한 마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잉카와 스페인식 건물의 환상적인 어울림과 오랜 역사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아낌없이 뿜어낸다. 잉카 제국의 정신과 스페인 문화의 조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쿠스코가 지구상에 있는 가장 매력적인 도시로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르마스 광장은 쿠스코 여행의 출발점이 되는 중심 광장이다. 북동쪽 계단 위에 우뚝 서 있는 대성당과 건축물들이 유럽의 광장에도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과 위용을 자랑한다. 아르마스 광장의 중심축은 웅장한 대성당과 라꼼빠니아 헤수스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성당의 큰 규모와 외벽에 장식된 조각품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잉카시대부터 존재하던 광장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없는 날에는 광장 한가운데 분수를 중심으로 시민들과 여행자들이 앉아 휴식을 즐기고, 은은한 조명이 반사되는 밤에는 또 다른 낭만을 선사해 준다. 멋진 회랑과 테라스가 길게 이어진 건물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대부분 카페나 레스토랑, 민속품점이나 여행사들이며 어디를 가든 호객꾼들이 따라붙는다.

안데스 산맥의 능선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광장의 분위기는 세상 어디와도 다른 독특함으로 여행객의 혼을 뺏는다. 첫눈에 그 도시의 분위기에 매료되어 여기서 한 몇 년 세상 모르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유혹이 온 마음을 휘감는다. 그 일탈의 유혹을 길게 누리고 싶었던 쿠스코에서의 짧은 여정이 아쉬울 따름이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수많은 원주민을 죽이고 태양의 신전 자리를 파괴한 자리에 성당을 세웠다. 무너진 잉카제국의 기반 위에 스페인식 건물들을 세웠다. 신전의 황금들을 다 훔쳐갔다. 하지만 석벽들과 돌길들…. 그 길 위에 서린 잉카문명의 지혜와 영혼의 힘은 지금까지 살아 뜨겁게 숨 쉬고 있다. 쿠스코의 참모습을 만나고 싶어 골목길을 정처 없이 걸어본다. 대단한 것을 발견하든 안 하든 중요하지가 않다. 골목길에 오고가는 사람들과 가벼운 눈인사가 정겹고, 잉카 전통복장의 아낙들과 찍은 사진 한 장에 행복하다. 광장을 지나 루미요크 골목으로 돌아서는 순간, 13세기 잉카제국 석조기술의 걸작인 '12각의 돌'을 만났다. 종이 한 장 들어갈 틈 없고 지진에도 끄떡없다는 정교함 앞에서 신의 경지가 느껴졌다.

골목을 서성이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또 다른 분위기가 연출된다. 어둠이 내린 골목에 귀에 익은 안데스 음악 '엘 콘도르 파사'가 광장 가득히 울려 퍼진다. 산스크리스토발 교회 언덕에서 야경을 감상한다. 서글픈 바람의 노래, 인디오들의 음악을 들으며 골목 바닥에 깔린 돌들과 광장의 기둥들이 어둠 속에서 신비롭게 빛나는 풍경을 마음속에 담는다.

◆잉카문명의 흔적을 찾아, 마추픽추 가는 길

쿠스코의 골목길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잉카의 꽃, 신비로운 공중도시 마추픽추를 만나러 간다. 가는 길에 시내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삭사이와만(Saksaywaman) 유적에 올랐다. 퓨마 모양의 쿠스코 시가지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산비탈 높이 산꼭대기 근처까지 지어져 있는 붉은 지붕들이 장엄한 풍경을 연출한다. 울컥 가슴이 벅차오른다.

쿠스코에서 북쪽으로 32㎞ 떨어진 작은 마을을 가는 길 내내 '성스러운 계곡'(Valle Sagrado de los Incas)의 웅장한 모습이 펼쳐진다. 6,000m 이상의 높은 산들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우루밤바(Urubamba)강은 오얀따이땀보를 지나 마추픽추 아래 마을인 아구아스 깔리엔떼스를 넘어 멀리 아마존 지역까지 이른다고 한다.

푸르른 하늘과 흰 구름을 머리에 이고 좁고 굽은 낭떠러지 길을 따라 신성한 계곡으로 들어선다. 마을을 떠나 우루밤바 계곡을 끼고, 푸르른 하늘과 흰 구름을 머리에 이고 곧 떨어질 것 같은 좁고 굽은 낭떠러지 길을 따라서 신성한 계곡에 들어섰다. 높은 산등성이에서 황토색 계곡 사이를 온통 흰색으로 도배한 잉카의 천연 산속 염전으로 유명한 살리나스 데 마라스(Salinas de Maras)를 내려다본다.

해발 3,000m의 거대한 언덕 비탈에 층층이 만들어진 염전은 잉카인들의 지혜와 땀이 배어 있는 곳이다. 암염이 녹아든 물을 작은 통로를 통해 약 2천여 개의 계단식 염전에 가둔 다음 햇빛으로 증발시켜 소금을 만든다. 대부분의 염전은 너비가 4㎡를 넘지 않고 깊이 또한 30㎝ 이상을 넘지 않는다. 소금물의 유입이 쉽도록 모든 염전을 다각형 구조로 건설했다고 한다. 지금도 옛날과 같은 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한다. 천연소금인 만큼 미네랄이 많아 자연 치유에 효과가 좋다고 알려져 있다. 안데스 산맥을 생활 터전으로 삼은 잉카인들에게는 소금은 귀중한 자원으로 '태양의 선물'이라고 부른다.

살리나스 데 마라스에서 계곡을 돌고 돌아 한참을 달리면 움푹 팬 계곡 아래 동심원 계단 모양으로 석재를 쌓아 놓은 농업 유적지 모라이(Moray)에 닿는다. 마치 우주선 착륙장과 같은 이곳은 잉카의 계단식 밭인 안데네스(Andenes)를 독특한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다. 부족한 농지 해결을 위한 계단식 농법과 고도에 적합한 작물 생산 시험장으로 잉카의 '농경기술연구소'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잉카제국의 과학적인 농업기술에 담겨 있는 잉카사람들의 정신과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해발 2,600m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는 돌로 만든 길과 벽, 수로와 구획 등 잉카시대에 만들어진 마을 형상을 그대로 간직한 '성스러운 계곡'의 중심 마을이다. 잉카의 길을 따라 마추픽추로 걸어가는 '잉카트레일'의 시작점이자, 좀 더 저렴하게 마추픽추로 가고자 하는 여행자들이 열차를 타는 곳이다. 오얀따이땀보 기차역을 출발하는 마추픽추행 기차에서 '철새는 날아가고'라는 귀에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는 잉카인들이 영혼의 새로 알려진 콘도르가 떠나 버린 텅 빈 산맥을 노래하는 내용이다. 오얀따이땀보를 떠난 열차는 2시간을 달려 마추픽추 입구인 아구아스 깔리엔떼스(Aguas Calientes)역에 도착했다. 안데스 산맥 한복판인 이 마을은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로 늘 붐비고, 마추픽추 관광객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추픽추를 위한 모든 편의 시설을 갖춘 베이스캠프라고 할 수 있다. 마추픽추로 올라가는 버스도 이곳에서 출발하고, 외부 도시에서 들어오는 기차의 종착역이기도 하다. 마추픽추로 향해 가는 길에 자연에 순응하며 매 순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잉카인들의 마음에 물 들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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