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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빈의 시와 함께] 애비의 죽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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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의 죽음은

이하석(1948~ )

그녀에게 애비의 죽음은

구름 같은 밥의 질문 안에 있지요.

꼬박꼬박 졸다 깨는

자식 자리 윗목에 묻는 밥의

식은 명백明白의 대답 같은 침묵이지요.

목구멍 넘기기도 전에

걸리는 사랑이라는 말의 뼈.

그 속에서 늘 우레가

수런거립니다.

천둥의 뿌리는

희디흰 생계 속에 있어서

분홍 아이스크림의

그 단맛 나는 길쯤이사

에돌아왔지요.

―시집 『천둥의 뿌리』 (한티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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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창의 발문에 의하면, 이하석의 시집 『천둥의 뿌리』는 대구라는 도시에서 벌어진 집단적 죽음의 기억을 불러내어 고통의 언어로 지어낸 집이다. 1946년 10월 항쟁을 비롯하여 한국전쟁 중에 가창 중석광산골, 앞산 빨래터 계곡, 경산 코발트광산, 칠곡 신동재 등지에서 자행된 민간인 집단학살을 생생히, 아프게 재현해냈다.

뭇 생명이 억울하게 떼죽음당하는 그 당시 어두운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죽지 않고 용케 살아남은 자들이다. 살아남은 자의 의무는 죽은 자를 기억하는 일이요, 죽은 자의 몫까지 살아내는 일이다. 시인이나 작가의 역할도 마찬가지! 시인 이하석은 "무덤도 없는 죽음의 사랑을―사로잡히지 않는 말로도―말 못한다"며 자식 자리 윗목에 밥을 묻는 어미의 심정으로 죽음의 기억을 낱낱이 재구성하고 있다. 마치 현존하는 과거의 시적 기록이야말로 진실과 화해로 가는 길임을 증거하듯이.

살아남은 자여! 아직도 구천을 떠도는 원혼의 뿌리를 파헤쳐 희생자들의 넋을 비나리하자. 빨갱이 자식이라는 말톱에 상처 입어 희디흰 구름 같은 밥마저 목구멍 넘기기도 전에 걸리는 유가족들의 한을 어루만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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