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물가
치솟는 물가에 자영업자들은 아우성이다. 식당 업주들은 단골손님들의 발길마저 끊길까 봐 가격 인상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찬거리를 사려고 장을 보는 주부들도 한숨만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24일 오후 찾은 대구 수성구 한 국숫집.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갈 시간이었지만 식당 안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이곳은 대부분 메뉴가 4천~5천500원대로 저렴한 편이어서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주인 정모(45) 씨는 "정말 죽을 맛"이라고 했다. 정 씨는 "10년 넘게 장사하면서 한 번도 가격을 올려본 적이 없는데 요즘은 재료비, 인건비가 너무 올랐다. 손님 끊어질까 봐 값싼 재료를 쓸 수도 없고…. 마진은 갈수록 줄고 있다"고 푸념했다.
중구 한 백반집은 고육지책으로 메뉴 변경을 고민 중이다. 여러 종류의 반찬을 준비하는 백반집 특성상 재료비 비중이 높고, 인건비 부담도 크기 때문. 지난해 600g에 1만원 정도였던 고춧가루는 2만원을 넘어섰고, 3만3천원이던 쌀 1포대(20㎏)가 4만5천원까지 치솟았다. 이곳 주인 조다영(71) 씨는 "채소, 고기 할 것 없이 식재료 가격이 전반적으로 껑충 뛰었다"면서 "아귀찜이나 해물찜 같은 찜류로 메뉴를 바꿀까 고민 중"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업주들은 재료비가 고공행진을 거듭해도 음식값은 올리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가뜩이나 경기가 어려운데 섣불리 가격을 올렸다가는 단골손님들의 발길마저 끊길 수 있기 때문이다. 동성로 인근에서 돈가스 전문점을 운영하는 김우년(34) 씨는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 손님들이 많은데 가격을 올리면 눈에 띄게 손님이 줄어든다"며 "재료비와 인건비가 오른 만큼 사장이 더 발로 뛸 수밖에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장바구니 물가가 치솟으면서 밥상도 덩달아 옹색해졌다. 1만원으로는 제육볶음 2인분을 만들 식재료도 못 살 정도다. 24일 1만원을 들고 대형마트를 찾았다. 돼지 앞다리살 한 근(600g)에 8천원, 양파 한 망 3천580원, 청양고추 2천200원 등 주요 재료만 장바구니에 담아도 1만3천780원이 됐다. 깐마늘(2천원)과 소주 1병(1천500원)을 더하면 2만원에 육박했다.
한파에 신선식품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서민들의 마음까지 얼어붙었다. 대구 달서구 용산동 대형마트를 찾은 전모(65'달서구 파호동) 씨는 "저녁 밥상에 김치찌개를 올리려고 했는데, 재료비가 너무 비싸다"고 장을 보는 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국거리용 돼지고기 앞다리살과 콩나물, 부추 등만 담았는데도 1만3천원이 넘었다. 전 씨는 "가끔씩 계산이 잘못 됐나 싶어서 영수증과 식재료를 일일이 비교해 볼 때가 많다"면서 "물가상승률에 비해 피부로 느끼는 체감물가는 훨씬 비싸다"고 했다.
특히 요즘 들어 가격이 크게 뛴 오징어는 '금징어'라 불릴 정도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대구의 오징어 생물 소매 평균가격은 지난해(3천900원)에 비해 25%나 오른 4천890원에 이른다. 오징어 3마리를 1만3천원에 구입했다는 주부 박경희(55) 씨는 "아들이 오징어채를 좋아하는데 너무 비싸서 자주 해줄 수 없다"며 "남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은 보통 2월이면 매출이 조금 줄어드는데 올해는 벌써부터 장사가 안 된다. 설에도 매출이 안 나올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서민들은 다가오는 설 차례상 차림 비용도 걱정이다. 주부 이현옥(53'달서구 감삼동) 씨는 "20만원을 들고 시장에 가도 예년처럼 차례상을 차리기 어려울 것 같다. 차례음식도 할인상품 위주로 미리 장만하고 있다"고 했다.
홍준헌 기자 newsforyou@msnet.co.kr 구민수 기자 msg@msnet.co.kr
◆전통시장…농산물 값 폭등에 손님 줄어 상인들 한숨
최저기온 영하 12℃의 한파가 불어닥친 24일 오후 2시쯤 대구 북구 팔달신시장. 700여 개 점포 중 70%가 채소류를 취급하는 이 시장은 최근 농산물 물가 폭등에 직격탄을 맞았다. 긴 아케이드를 끝까지 지나는 동안 물건을 구매하는 손님은 20명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한산했다. 손님을 맞지 못한 상인들은 의자에 앉은 채 얼어붙은 손을 녹였다.
상인 장해숙(60) 씨는 "손님 수가 평소 절반도 안 된다. 평소에는 새벽시장에서 물건을 떼 와 바로 장사를 시작했는데 요즘에는 손님이 없어 집에서 쉬다 그나마 따뜻한 대낮에야 문을 열고 있다"며 "배추나 무, 파처럼 가격에 큰 변동이 없는 채소도 많은데 일부 채소의 물가가 폭등해서인지 손님이 크게 줄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시장을 찾은 시민들은 부쩍 오른 물가에 혀를 내둘렀다. 상추를 사러 왔다는 정인순(77'서구 원대동) 씨는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10~20% 정도 싸서 왔는데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다"며 "상추뿐만 아니라 다른 채소들도 가격이 올랐다. 이제 설이 다가오는데 가격이 더 오를까 걱정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찌감치 장사를 접는 상인들도 적잖았다. 특히 채소를 취급하는 가게 대부분이 오후 3시도 되지 않은 시각에 문을 닫았다. 채소류를 팔던 상인 신영순(70) 씨는 채 팔지 못한 채소 위에 두꺼운 이불을 덮었다. 신 씨는 "손님도 없는데 물건을 밖에 내놓기만 하면 얼어서 나중엔 팔고 싶어도 못 판다. 채소값이 올라 물건 떼 오는 것도 이전보다 부담인데 차라리 일찍 장사를 접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매대를 정리하는 신 씨의 돈 바구니에는 거스름돈으로 준비해 둔 동전만이 가득했다.
매섭게 몰아친 기습 한파가 농작물 생산에 영향을 미치며 오이, 풋고추, 상추 등 일부 채소 가격이 가파르게 올라 설 대목을 앞둔 소비자들의 소비심리도 꽁꽁 얼어붙었다.
대구시가 집계한 전통시장 가격동향에 따르면 물가가 채소를 중심으로 오름세를 보였다. 이달 첫 주(3일)보다 셋째 주(20일)의 평균가격이 오이와 수박은 각각 34.9%와 34.4%나 올랐다. 호박(30.4%)과 상추(12.4%), 귤(11.4%) 등도 눈에 띄게 비싸졌다. 한파로 인해 겨울철 비닐하우스 농작물 재배비용이 늘어 비닐하우스 대표적 농산물 가격이 폭등한 것.
팔달신시장 관계자는 "가뜩이나 겨울이면 소비자들이 따뜻한 대형마트를 찾아 손님이 급감하는데 농산물을 주로 다루는 시장에서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올라 걱정"이라고 했다.
박상구 기자 sang9@msnet.co.kr
◆시설농가…난방비 늘고 품질 저하, 수확량도 줄어 '3중고'
24일 오후 고령군 대가야읍 봉이딸기농원 이덕봉(55) 대표는 딸기의 생육상태를 살피다가 보온을 위해 온수관로를 긴급 점검했다. 한파가 이어진다는 소식에 혹시 냉해라도 입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는 "난방비 등 생산 비용은 늘어나는 반면 생산량과 품질은 오히려 떨어져 정말 힘들다"면서 "수정을 위해 넣어 놓은 꿀벌도 추워서 잘 날아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한파에 딸기와 참외 등 시설재배 농민들이 생산비 증가와 수확량 감소, 품질 저하 등 3중고를 겪고 있다.
겨울철 시설채소의 경우 대부분 2중 하우스에 난방을 가동해 작물을 재배한다. 낮에는 햇빛에 의지하지만 일몰 이후에는 온풍기'온수 등으로 보온을 해야 작물이 냉해를 입지 않는다. 특히 딸기의 경우 생육 적정온도가 주간 17~23℃, 야간 10도 내외이기 때문에 딸기 재배 농민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이덕봉 대표는 "기온이 떨어지면서 2만3천여㎡ 딸기하우스의 보일러 가동 시간이 늘어 난방비 등 비용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면서 "게다가 생산량이 줄어 가격이 지난해와 비슷해도 수익에는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고령군은 경북도의 최대 딸기 주산지이다. 현재 400여 농가가 169㏊에 연간 5천여t을 생산해 300억원 이상의 조수입을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한파가 길어질 경우 심각한 타격이 우려된다. 고령군농업기술센터에 따르면 딸기는 냉해를 입으면 뿌리의 활력이 떨어져 품질도 떨어진다.
안동시 풍천면 기산리 '딸기 시설하우스' 단지 농가들도 걱정이 크다. 지난해 여름 이상 기온으로 딸기농사의 밑거름이 될 수정에 차질을 빚으면서 생산량마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지면서 생산비 줄이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성주참외도 사정은 마찬가지. 성주읍 대황리서 참외하우스 1만2천㎡를 경작하는 배모(54) 씨는 "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참외 생육이 늦어지고 당도가 떨어지는 등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전체 참외 농가들이 날씨 변화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했다.
안동 엄재진 기자 2000jin@msnet.co.kr
고령성주 이영욱 기자 hell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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