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인사하며 삽시다!

각종 학교의 졸업식이 다가온다.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까? 필자는 지금까지 여러 번의 졸업을 했지만 졸업식 때 교장 선생님과 총장님의 훈사가 어떤 내용인지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10년도 더 넘게 지난 딸아이의 중학교 졸업식 때 하신 교장 선생님의 훈사 주제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주제는 '인사 잘 해라' 였다. 교장 선생님은 별다른 예화도 없이 인사 잘 하라는 주제로 30분의 지루한 화법을 이어갔다. 어린 졸업생들은 힘들게 훈사 시간을 버티어 냈다. 성인이 된 나로서는 '인사만 잘 해도 밥은 먹고 산다'는 '진리'를 알고 있었지만, 이제 겨우 중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그 주제가 그토록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택시 이용객이 택시를 타면서 '어서 오세요. 어디 가세요? 안녕히 가십시오' 이 세 마디 인사를 정확히 듣는 것은 기본적인 일일 것이다. '감사합니다' 까지 포함하여 네 마디가 된다면 더 좋겠다. 나는 대구에서 10년을 살면서 이 세 마디 인사를 하는 기사를 만난 적이 드물다. 나만의 불행일까?

내가 택시를 탔을 때의 상황을 시나리오로 적으면 이렇다. (택시 문 열고 손님 탐) 기사: (침묵). 손님: 안녕하세요. 00동 00아파트 가주세요. 기사: (침묵). (아파트 도착) 손님: 감사합니다. (손으로 요금 건냄) 기사: (침묵하며 자동기계처럼 거스름돈 내줌) 손님: (하차 후 차 문 닫음).

택시 기사들의 너무나 한결같은 반응에 어느 날은 택시 탑승 후 나도 어떻게 할지 몰라 침묵했다. 자동기계처럼 출발하던 택시가 속도를 늦추더니 짜증과 공격성이 섞인 한마디가 투포환 경기의 포환처럼 묵직하게 뒷좌석으로 날아온다. "손님, 어디 간다고 말을 해야지요." '어디 가는지 자기가 먼저 물어보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두려움 때문에 황급히 꼬리를 내렸다. 기사와의 기 싸움에서 내가 졌다.

하루는 일정도 바쁘고 마음도 바쁜 날이었다. 택시 기사가 인사를 하건 말건 "동대구역 가주세요" 한마디 후 일에 골몰했다. 목적지에 거의 다 올 무렵 "박병욱 목사님이시죠? 목소리가 그런 거 같아서, 제가 목사님 방송을 잘 듣고 있습니다".

깜짝 놀랐다. '그래, 지금까지 다른 기사들도 다 나를 알아보고 내 행동을 관찰했는지도 모르겠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불편한 기색이 백미러를 통해 비추어지지는 않았을까?'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기사가 진상 손님을 한 번 만나고 나면 핸들 잡기도 싫을 거야. 기사가 친절한 인사보다도 목적지에 잘 데려다 주기만 해도 소명을 이룬 것 아닌가?'

'여러 인생을 위로하며 동행하는 목사나 먼 길을 인도해주는 택시 기사나 여러 사람의 길동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같은 상황도 대응하는 방법에 따라 현실이 다르게 흘러가지 않는가? 같은 대상도 관계 맺기에 따라 다른 관계가 되지 않는가?'

두서없는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서 교차했다. 실명 공개의 힘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 놓는가 보다.

그 사건 이후 나는 열심히 인사하며 감사하게 택시를 이용한다. 기사들은 여전히 반응이 없다. 인사만 잘 해도 밥은 먹고 사는데, 인사 못 해도 밥을 잘 먹으면 좋겠다. 그래, 어차피 만남의 끈을 가꾸려면 굳이 남에게 기댈 이유가 없지 않은가? 너와 나의 만남이라면, 비록 돈을 주고받을지라도, 잠시라도 한 차를 타고 가는 길동무라면 반가운 만남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각자가 참 대단한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는 인사 한마디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고, 침묵을 통해서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다. 행복한 만남의 끈을 내가 먼저 가꾸자. 일상의 사사로운 만남 속에서도 축복이 넘치면 좋겠다. 행복의 아우라, 미소의 아우라를 비추며 살자.

칼럼의 끝에 추신을 달고 싶다. 졸업생들, 택시 기사들뿐만 아니라, 내가 자주 가는 병원의 김 박사, 자주 만나는 최 사장에게도 꼭 이 말을 해야겠다. 우리 인사나 제대로 하면서 삽시다.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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